‘중국발(發) 공포’로 인한 한국 기업의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중국이 제조업의 각 부문에서 최강자로 올라서는 업종이 늘어날수록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는 한국 기업은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구조조정 움직임은 중국발 공포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석유화학 철강 조선 전자 등에서 두드러진다. 정부도 조선업을 비롯해 한계 기업을 퇴출시키는 구조조정 카드를 검토하면서 산업계에 ‘한시라도 빨리 자율적 구조조정에 나서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 중국 대응 위한 전방위 구조조정
요즘 철강업계는 국내에 급증하는 중국산 철강 제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수입된 중국산 철강 제품은 1300만 t으로 철강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근 H형강 등 범용 제품은 중국산과 국산의 품질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중국 경기가 둔화되면서 남아도는 철강 제품이 저가로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국산 자동차와 선박에는 중국산 철강 제품이 들어간다. 생산량 기준 세계 4위인 중국 바오스틸은 2013년 경기 화성에 260억 원을 투자해 연산 30만 t 규모의 자동차 강판 공장을 준공한 뒤 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업체에 강판을 공급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현지법인을 통해 세계 6위 철강사인 사강그룹의 후판(선박 제조 등에 쓰이는 두꺼운 철판)을 수입해 자사가 건조하는 선박에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산 후판은 국산보다 가격이 t당 13∼25% 싸다.
국내 철강업체들은 중국산 저가 제품과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의 가동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시키는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다. 동부제철은 지난해 12월 300만 t 생산 규모의 당진 열연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현대제철은 올해 1월 포항의 75t 규모의 전기로와 철근라인을 폐쇄했다.
석유화학업계에서도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등 일부 품목의 중국발 공급 과잉에 시달리면서 사업 조정에 나서고 있다. TPA는 파라자일렌(PX)을 원료로 생산하는 순백색 분말 형태의 제품으로 폴리에스테르 섬유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의 주원료로 쓰인다. 국내 PTA 생산량은 2012년 619만 t에서 지난해 534만 t, 올해 상반기 257만 t 등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중국이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해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PTA의 공급 과잉 규모는 268만 t, 올해는 상반기에만 127만 t에 이른다.
이에 따라 석유화학 업체들은 전방위적인 사업 조정에 나서고 있다. SK유화는 PTA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고 롯데케미칼도 생산라인 전환을 진행하고 있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PTA가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약 5%)은 크지 않지만 중국발 공급 과잉 쇼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형 조선사는 중소형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과 경쟁한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중국산 선박의 가격은 국산에 비해 5∼20% 싸다. 아직은 연료소비효율과 내구성 등의 측면에서 중국과 한국의 기술격차는 꽤 벌어져 있지만 5∼10년 후에는 장담할 수 없는 분위기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해운 시황이 악화된 데다 중국 업체들이 싼값을 제시하다 보니 저가 수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최근 중소형 조선사들이 어려워진 원인”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한국 전자산업도 위협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대 시장인 중국을 애플과 현지 기업인 화웨이, 샤오미 등에 빼앗기면서 새로운 전략 마련이 시급해졌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14년 1분기 30.9%에 이르던 삼성전자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올 3분기 23.7%로 떨어졌다. 그 대신 4.7%에 불과하던 화웨이는 내수시장에 힘입어 3분기 7.7%로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샤오미도 3.8%에서 5.0%로 상승세를 그렸다. 삼성전자는 갤럭시온5 갤럭시온7 등 10만 원대의 ‘초저가’ 제품 출시 등으로 중국 내수시장 잡기에 나서고 있다.
○ “아예 중국 기업에 팔자”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에선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중국 기업에 회사를 팔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이 기업들은 중국과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아직 매물 가치가 있을 때 미리 경쟁 또는 협력관계를 갖고 있는 중국 기업에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중소 자동차부품 업체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올해 들어 가장 큰 공급처인 현대·기아차가 예상보다 어려움을 겪자 공급 부품업체들의 어려움도 커졌다. 이 때문에 2, 3차 이하의 벤더(납품 협력 업체)들이 중국 기업에 회사를 매각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 역시 한국 자동차부품 업체가 상대적으로 기술적 우위에 있다는 점 때문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중국 토종 자동차 기업의 성장세가 가파른 만큼 기술력 보완을 위해 싸게 나온 알짜 한국 자동차부품 업체들을 사려는 이들이 있다”며 “향후 한국 기업에 대한 쇼핑이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업체들의 사업 재편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