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정문 안 거리는 여느 전통시장과 다르지 않았다. 가을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길 좌우 양쪽, 깔끔하게 정돈된 과일, 채소, 생선 좌판 앞에서는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이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잘 키운 청년몰 하나 열 백화점 부럽지 않다.’
정문에서 2분쯤 걸었을까, 시장 안 낡은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이같이 재밌는 문구들이 손님들을 유혹했다. 도시 어딘가에서 왔을 법한 배낭을 멘 젊은이들은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로 문구를 담았다. 계단을 올라 건물 2층으로 들어서자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마치 서울 홍익대 앞 혹은 상수동 거리의 어느 한 부분을 뚝 떼어다 옮긴 것 같은 젊은이들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삼삼오오 모인 젊은이들이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사진이 잘 찍혔는지를 보려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커플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1970, 80년대 분위기를 재현한 이곳에는 수제 액세서리 등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과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가 눈에 띄었다.
6일 오후에 찾은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 남부시장과 그곳에 위치한 청년몰의 풍경이다. 이곳은 사회적기업 ‘이음’이 침체된 전통시장을 살리는 동시에 젊은이들에게 창업 기회를 주기 위해 2011년 창안한 곳이다. 한옥마을과 불과 800m 떨어진 입지조건도 청년몰 설립에 힘이 됐다. 초창기 12개 점포가 있던 이곳에서 지금은 33명의 청년상인들이 손님을 맞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수입과자 전문점 ‘오메달다’의 사장 박하설 씨(27·여)는 상호명처럼 달달한 꿈을 먹고 사는 청년몰의 전형적인 청년상인이었다.
○ 직접 디자인한 포장지로 수입과자 판매
박 씨가 운영하는 가게는 21m² 남짓한 작은 공간. 지난해 6월 문을 연 가게 안은 수입 젤리, 초콜릿, 사탕으로 가득했다. 시중 편의점에서는 보기 힘든 독일, 일본, 미국 등에서 온 물건들이었다. 귀여운 디자인을 한 제품부터 박 사장이 손수 포장한 제품으로 가격대는 500원에서 1만2000원까지 다양했다. 레고 장난감, 꽃바구니, 캐릭터 인형 등이 제품 사이사이에서 제품들을 더욱 아기자기하게 만들었다.
가게의 주 고객층은 젊은 여성과 초등학생들이다. 또 손님의 90% 이상은 전주가 아닌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다. 한옥마을을 들렀다 청년몰을 찾는 것이 여행코스처럼 인터넷에 소문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감사하게도 한번 가게를 찾았다가 다음 전주 여행 때 또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고 있다”며 “찾는 사람들이 있으니 가게 관리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층을 공략할 물건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파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입품이 들어오는 서울과 부산의 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흥정하며 물건을 들여온다. 한번 시장을 찾을 때 10곳 이상의 도매상을 돌아보는 것은 기본이다. 아직은 ‘장사꾼’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 탓에 도매상인들이 대학생이 싼값에 물건을 사는 것으로 오해해 그를 가게에서 쫓아내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그에게는 소중한 장사 밑천으로 쌓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도매상에게 말을 못해 친구에게 대신 말해 달라고 하기도 하고 가게에 들어가서도 쭈뼛대기만 했는데 이제는 기 싸움도 조금은 할 수 있게 됐다”며 웃으며 말했다.
○ 베짱이 청년상인
박 씨는 애초 사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2012년부터 2년여간 서울의 한 작은 디자인업체에서 미술 전시 공간 디자인과 관련 편집 일을 했다. 원하던 일을 하던 그였지만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매일 야근을 해야 하는 삶에 점점 지쳐 갔다고 한다. 사람으로 가득해 움직일 수조차 없는 출근길 지하철도 복잡한 곳을 싫어하는 그에게 고역이었다. 그는 결국 지난해 5월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전주로 내려왔다.
귀향한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함께 하기 위해 장사를 선택했다. 자신이 가진 시간을 본인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컸다고 한다. 미술작업을 할 장소가 필요하다는 점도 창업 결심을 뒷받침했다. 다행히 장사 초기 자본금은 500만 원밖에 들지 않았다. 임차료가 관리비 수준으로 저렴했고, 내부 인테리어도 지인들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지금 가게에서 장사 품목으로 내놓고 있는 젤리와 초콜릿, 사탕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식품들이다. 가게 안을 가득 채운 인형도 박 씨가 애지중지하는 친구들이고, 가게의 파스텔톤 분홍빛 역시 그가 좋아하는 색이다. 제품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 중 일부는 그가 디자인한 것이다. 그는 창업 계기에 대해 “좋아하는 것으로 일을 하고 싶어 장사를 시작했고 가게 안 모습이 이런 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이 때문인지 박 씨는 다른 청년상인들과는 다르게 ‘독기’가 없다. 그럼에도 박 씨는 청년몰 입구에 쓰인 글귀처럼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고 있다. 밝히긴 꺼렸지만 수입도 서울살이 때보다 많다고 한다.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부탁에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좋아하는 물건을 팔아 보세요. 좋아하는 색으로 가게를 꾸며 보세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손님들도 좋아할 거예요.” ▼ 전국 쌀값 쥐락펴락 하던 ‘호남대표’ 80년대 이후 쇠퇴하다 청년몰로 부활 ▼
전주 남부시장 어제와 오늘
전북 전주시 남부시장은 조선시대 3대 시장 중 하나로 현재 2만1349m² 터에 1690명의 상인이 생업을 이어 가고 있는 호남권 최대 전통시장이다. 상인들 사이에서 1473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남부시장은 1905년 정기 공설시장으로 개설됐다. 당시에 불리던 이름은 ‘남문 밖 시장’이었다. 이후 일본 상인들이 진출하면서 전주읍성 밖 동문·서문시장이 쇠퇴하면서 1923년 지금의 남문시장으로 동문·서문시장 상인들이 유입됐다. 1936년 시장이 대폭 확대되면서 남문 밖 시장은 지금의 남부시장이라는 정식 명칭을 갖게 됐다. 당시 1년간 시장을 찾은 사람이 186만 명이나 됐다.
남부시장은 1930년대에는 호남권 최대 물류 집산지로 1960, 70년대에는 전북의 상업, 금융, 교통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쳤다. 당시엔 전국의 쌀값 시세가 남부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과거의 영광이 크지만 남부시장도 전통시장 쇠퇴라는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1980년대 이후 전주 외곽 지역에 속속 아파트가 들어섰고, 아파트 단지마다 대형상가가 따라 들어오면서 남부시장도 힘든 시기를 겪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것 중 하나가 청년몰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청년몰에서 시장 상인들은 희망을 보고 있다. 시장을 찾는 젊은층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물론이고 양적으로도 전체 고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남부시장에 하루 평균 4200명의 고객이 찾았지만 지난해에는 하루 평균 5930명이 시장을 찾았다. 하루 평균 방문객이 29.1%나 늘어난 것이다. 6일 오후 남부시장을 찾은 천성희 씨(26·여·경기 수원시)는 “전주를 다녀온 지인들이 청년몰을 한번 찾아보라고 추천해 왔는데, 20, 30대 젊은층이 만족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런 성과를 토대로 남부시장은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남부시장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방문 외국인에게 남부시장의 맛집을 소개하는 맛집존을 설치할 계획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맛집존에서 이용자가 스마트폰으로 맛집존에 있는 음식을 검색하면 쉽게 상점을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와 함께 투어메이트(tour-mate·여행친구) 제도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전주나 인근에 거주하는 영어 능통자를 섭외해 외국인 관광객에게 통역 및 관광 가이드를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남부시장의 매력도 알린다는 계획이다.
남부시장이 청년과 외국인을 상대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은 주변에 여러 역사 문화 관광지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 동문은 옛 전주읍성의 관문이자 보물 308호로 지정된 풍남문을 끼고 있다. 700여 채의 한옥으로 이뤄져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 거듭난 한옥마을은 시장과 800m 떨어진 거리에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천주교 성당인 전동성당도 남부시장과 가까운 든든한 문화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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