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10일 건설 및 조선업의 해외수주 사업에 대해 ‘수익성 평가’를 강화하기로 했다. 업체의 지명도만 보고 허술하게 대출해 온 관행에서 벗어나 수익성이 떨어지는 저가 해외수주 사업에 대해 정책금융기관은 신규 대출을 해주지 말라는 메시지다. 무리한 저가 수주 관행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기업들의 부실을 초래할 뿐 아니라 금융시스템까지 위험에 빠뜨린다는 우려 때문이다. 》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2009년을 전후해 중동 지역에서 대형 공사를 잇달아 따냈다. 당시 해외 건설업계에는 ‘수익성을 따지기 전에 일단 수주부터 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특히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국내 업체 간 출혈 경쟁이 극심해졌다. 이때 저가 수주한 물량이 최근 잇따라 완공되면서 건설업체들의 장부에 손실이 한꺼번에 반영되고 있다. 최근 ‘어닝 쇼크’를 겪은 삼성엔지니어링이 대표 사례다.
대우조선해양은 올 2분기(4∼6월)에 3조 원대의 손실이 실적에 반영됐다. 하반기(7∼12월)에도 2조 원대의 추가 손실이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 애초 해양플랜트를 저가에 수주했을 뿐 아니라 사업 도중 원가 상승 요인이 있었는데도 발주처에 계약조건 변경을 적극적으로 요청하지 않는 등 관리를 부실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정부는 10일 이처럼 무리한 수주 관행과 안이한 사후 관리로 해외 건설과 조선 분야의 부실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정부는 수익성 평가기구를 신설해 건설사와 조선업체가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한 경우 기업의 지명도가 아니라 해당 사업의 수익성을 면밀히 평가해 대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 수익성 낮은 저가 수주 관행에 철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해외 건설 및 조선업 부실 방지를 위한 관계기관 간담회’에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저가 수주로 업체들이 부실화되는 만큼 정책금융기관들이 수익성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정한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신규 대출을 해주지 말라는 의미다.
종전에도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이 수주 사업의 사업성을 검토하긴 했지만 건설사나 조선사의 지명도를 믿고 대규모 자금을 선뜻 대출해 주는 사례가 많았다. 다만 이미 나간 대출을 회수하는 것은 아니다. 이날 간담회에는 임종룡 금융위원장,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경환 국토교통부 1차관,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 김영학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박기풍 해외건설협회장, 서영주 조선해양플랜트협회 부회장, 임남섭 플랜트산업협회 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은 건설사와 조선업체가 수주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자금을 댈 때 전문기관을 통한 수익성 평가 절차를 반드시 거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책금융지원센터와 해양금융종합센터의 역할을 강화하고 수익성 심사를 전담할 평가기구도 구성할 예정이다.
○ 부실이 금융시스템으로 확산될 우려 높아
정부가 건설 및 조선사들의 수주 사업 심사를 강화한 것은 수주 경쟁이 해당 업종의 부실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정책금융기관의 건전성까지 악화시키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 막대한 규모의 정책금융자금이 들어간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인 사례다. 해양플랜트 부문의 무리한 수주가 계속됐지만 채권단이 이를 사전에 적절히 제어하지 못해 결국 수조 원의 부실이 터졌다는 것이다.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건설사들이 벌인 과도한 덤핑 수주 경쟁도 문제로 꼽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와 실적 악화를 만회하기 위해 건설사들은 중동 등 해외 각지에서 발주처의 예정가 대비 50%도 안 되는 금액에 응찰해 공사를 수주했고 그중 상당수는 적자 수주로 이어졌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기업 중 법정관리로 간 기업은 최근 5년간 333곳이고 이들 기업에 대한 여신은 총 5조5000억 원에 이른다.
부실을 메워줘야 하는 국책은행들은 휘청거리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말 현재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0.5%로 일반 은행 평균(15% 안팎)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정부는 수출입은행의 건전성 악화를 막기 위해 세금을 동원해 추가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업은행 역시 대우건설과 STX그룹 부실이 커지면서 재작년에 13년 만에 첫 적자를 냈다.
건설업계는 정부의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해외 시장에서 수주가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최근 해외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은 일부 건설사들의 실적이 크게 부진한 만큼 정부가 경고할 필요는 있지만 수주 실적이 급감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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