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퇴임한 이상철 전 LG유플러스 부회장을 두어 달 전까지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통신업계 ‘대부’ 격인 그는 김대중 정부 말기(2002년 7월∼2003년 2월)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고, 2010년 1월 LG텔레콤-LG데이콤-LG파워콤 3사의 합병법인을 맡아 LG유플러스라는 지금의 회사를 만들었다. 그는 당시 꼴찌 패배감에 휩싸여 있던 LG유플러스에 경쟁사보다 앞서 롱텀에볼루션(LTE)이라는 희망을 제시하며 분위기를 바꿔냈다. 지금은 누구나 쓰는 LTE이지만 당시에는 파격이었다. 시대를 앞서 보는 능력이 있었던 그가 현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은(그땐 마지막이 될 줄 몰랐지만) “LTE는 2, 3년 안에 끝난다. 새 성장 동력은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이다”였다. 그러면서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IoT도 생각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IoB로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B는 뇌(Brain)이다. 컴퓨터가 인간의 뇌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전 부회장의 IoB 얘기를 듣고 미래창조과학부 고위 공무원들이나 몇몇 ICT 전문가들에게 곧 다가올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을 물었다. 다양한 얘기가 나왔는데 공통된 단어들이 있었다. 빅데이터, 머신러닝, 딥러닝, 인공지능(AI) 등이다. ‘뇌’라는 얘기가 직접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 모든 개념이 뇌로 귀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자의 네이밍 직업병이 도졌다. 그렇다면 그런 사회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서병조 한국정보화진흥원장은 ‘비 미(be me) 시대’라고 했다. 인공지능으로 발전한 컴퓨터가 나 자신이 돼, 나를 대신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시대라는 얘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나를 한없이 보여주고자 했던 ‘쇼 미(show me)’ 시대가 지나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을 정확히 알아내려 했던 ‘노 미(know me)’ 시대를 거쳐 이제 비 미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ICT 전문가인 최재유 미래부 2차관은 ‘지능화 사회, 지능정보 사회’라고 규정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정보화 사회에서 지능정보 사회로 넘어가는 변환기라고도 했다. 하루가 멀다고 등장하는 빅데이터 기술과 머신러닝 기술들이 그 증거다. 컴퓨터가 폐쇄회로(CC)TV를 보면서 순식간에 범인을 찾아내는 시대다. 조금만 더 지나면 범죄가 발생하기 전 ‘범죄 예정자’의 불안정한 시선 처리나 얼굴 움직임만으로도 경고를 주는 단계까지 갈 것이다. 대규모 인명 살상 범죄나 테러 등을 막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기술들이다.
이런 엄청난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순 없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터미네이터’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고 기술을 도외시할 순 없다. 두려움과 걱정을 가지고 서둘러 빨리 가는 것이 정답이다. 시대적 변환기에 기술을 선점한 집단이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것은 진리다. 멀게는 네안데르탈인을 대신한 크로마뇽인이 그랬고, 가까이는 초일류 강대국이었던 미국이 그랬다. 이제 우리는 지능정보 사회, 비 미(be me) 시대를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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