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은 “그동안 진짜 할 만큼 다했다”고 털어놨다. 엔씨소프트와 1년여 동안 벌인 경영권 분쟁은 ‘전쟁’으로, 2012년 5월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14.68%)을 사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던 국내 게임업체 최대 빅딜은 ‘미완의 동맹’으로 각각 표현했다.
넥슨이 7일 ‘플레이(Play·사진)’라는 제목으로 20년 기업사(史)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창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넥슨 창업자인 NXC(넥슨 지주회사) 김정주 대표의 행보를 담은 일종의 자서전이다. 특히 엔씨소프트와 벌였던 경영권 분쟁에 대한 뒷이야기를 8쪽에 걸쳐 담았다. 분쟁을 끝낸 홀가분함보다는 아쉬움과 해명에 비중을 뒀다.
○ “전쟁을 택한 건 김정주가 아니다.”
“나 방금 결정했어.”(김택진)
“아, 그래요? 바로 서울로 올라갈게요.”(김정주)
2012년 5월 한라산을 오르던 김정주 NXC대표와 서울에 있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손을 잡는 순간이었다. 당시 넥슨은 엔씨소프트 주식 14.68%를 취득해 엔씨소프트 최대 주주가 된다. 김택진 대표 지분은 9.99%로 줄어들어 2대 주주가 된다.
20년 넘게 쌓아온 인연을 바탕으로 하루아침에 결정된 ‘동맹’이지만 하나가 되기에 둘은 너무 달랐다. 넥슨이 책을 통해 “엔씨소프트 지분은 무용지물에 가까웠다”고 회고할 정도다. 넥슨은 초기 협업의 시작점을 김정주 대표의 제안으로 삼았지만 경영권 분쟁을 시작한 것은 오웬 마호니(넥슨 일본법인 대표)임을 강조했다. 동맹을 일방적으로 깨고 엔씨소프트를 집어삼키려는 탐욕스러운 ‘배신자’라는 김정주 대표를 향한 일각의 평가에 대한 해명인 셈이다.
엔씨소프트와 경영권 분쟁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룬 15장 ‘패스파인더’의 첫 문장도 ‘오웬 마호니가 시작했다’다. 김정주 대표에 대해서는 ‘이사회 멤버인 김정주도 동의했다. 김정주도 더 이상 자신의 방식으론 넥슨과 엔씨소프트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고 담은 것이 전부다.
○ 여전히 남아있는 앙금
경영권 분쟁의 뒷이야기는 대부분 날짜로 문장을 시작한다. ‘2015년 1월 21일 수요일이었다’는 식이다. 경영권 분쟁 당시 ‘감정싸움’으로 번졌던 김택진 대표의 부인이자 비등기 임원으로 있던 윤송이 부사장(글로벌최고전략책임자·Global CSO)의 사장 승진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1월 22일 목요일 엔씨소프트 측에 넥슨 이사회 결정(경영 참여)을 알렸다. 엔씨소프트는 넥슨 측에 공시를 주말 동안만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넥슨의 경영 참여 의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내부에서 논의해보겠다는 의미 같았다. 1월 23일 금요일이었다. 엔씨소프트는 돌연 윤송이 글로벌최고전략책임자 겸 북미유럽법인 대표를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당시 두 회사 모두 표면적으로는 윤 사장에 대한 인사가 경영권 공방과 무관하다고 밝혔었지만 여전히 둘 사이의 앙금으로 남아있다는 점이 읽히는 대목이다.
○ 출판 1년 가까이 미루며 경영권 분쟁 내용 담아
책은 ‘바람의나라’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던전앤파이터’ 등 국내 게임 역사를 써내려간 넥슨이 어떻게 성장했고, 무엇을 꿈꾸는지를 담았다. 넥슨의 스물한 해 동안 협력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경쟁하고 다시 만나는 일을 반복했던 사람 얘기다.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를 만든 송재경 현 엑스엘게임즈 대표, 넥슨의 시작점을 함께한 김상범 전 이사 등과 KAIST 대학원 기숙사 방에 모여 통닭을 시켜 먹으며 게임을 만든 얘기. 매해 겨울 스키장에서 가끔 최상급자 코스에서 활강을 해버려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던 김정주 대표의 일상도 담겨 있다.
넥슨 측은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야전교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실패와 성공 스토리를 숨김없이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책 출간을 위해 넥슨 측은 넥슨 창업 당시 멤버 및 게임업계 20여 명을 인터뷰했다. 김택진 대표는 인터뷰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넥슨으로서는 이번 책이 경영권 분쟁의 ‘마침표’다. 엔씨소프트 입장은 어떨까. 엔씨소프트는 9일 오전 11시 ‘리니지 17주년 기자간담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는 김택진 대표가 직접 참석할 예정이다. 엔씨소프트 측은 책과 관련해 “아직 어떤 내용도 읽어보지 못했다”며 언급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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