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 제조사인 BOE(중국명 징둥팡·京東方)는 이달 2일 안후이(安徽) 성 허페이(合肥) 시에서 10.5세대 패널 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축구장 20개가 넘는 크기의 이 공장이 2018년 완공되면 월 9만 장의 패널을 뽑아내 65인치 이상의 대형 TV용으로 공급하게 된다. 왕둥성(王東升) BOE 회장은 현지 관영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시황을 고려하지 않고 투자를 늘려 2022년 삼성과 LG를 넘어 세계 1위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제품 가격 하락을 고려하지 않고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 감가상각비 없는 중국, 공격적 생산량 확대
3370×2940mm 크기의 기판을 사용하는 10.5세대 LCD 공정은 아직 8세대(2500×2200mm)에 머물러 있는 한국 기업들이 시도하지 않은 대형 공정이다. 기판이 클수록 한 장의 기판에서 뽑을 수 있는 제품의 양이 많아져 원가 경쟁력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는 설비의 감가상각비를 제외했을 때 얘기다.
BOE의 허페이 신공장에는 초기 투자비용만 400억 위안(약 7조2000억 원), 부대시설 등을 포함하면 3년간 약 20조 원이 투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공급 과잉으로 폭락하고 있는 LCD 패널 가격을 고려하면 투자비 회수 가능성 여부에 의문에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BOE는 전체 투자금액 중 10%인 40억 위안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정부에서 지원받는다. 감가상각비가 거의 들지 않는 셈이다.
이는 투자비 회수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국내 제조사들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지분투자 형식으로 지원하고 세수를 통해 이를 회수하는 방식”이라며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는 10.5세대 LCD 공정은 투자비 회수 시나리오가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장 내년부터 대형 LCD 패널 생산용량은 중국이 한국을 역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2015년 3분기(7∼9월) 기준 대형 LCD 패널 시장 점유율은 LG디스플레이가 22.6%로 1위, 대만 이노룩스가 17.4%로 2위다. BOE는 3위 삼성디스플레이(17.0%)와 4위 대만 AUO(15.1%)에 이어 12.3%로 5위를 차지하고 있다.
○ LCD 패널업계 ‘치킨게임’ 시작
시황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왕 회장의 방침은 LG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의 주 수익원인 대형 LCD 패널 시장에서 ‘치킨게임’이 시작되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미 최근 3년간 대형 LCD 패널의 가격은 40% 추락했다. BOE는 가격 하락에 아랑곳하지 않고 허페이 10.5세대 공장을 포함해 3개의 대형 LCD 공장을 신설하면서 패널 공급량을 늘릴 계획이다. 푸저우(福州)와 청두(成都)에 지어지는 공장들도 물론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고정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기업들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생산량 조정으로 인한 가격 안정화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CD 시장이 중국발(發) 가격경쟁 체제로 진입하게 되면 한국 기업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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