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다는 것은 어쩌면 ‘가면’을 늘려가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맞는 얼굴을 골라 사용하다 보면, 정작 내 진짜 얼굴을 잊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맛있는 위로’(이유석·문학동네·2012년) 》
만화작가 아베 야로(安倍夜郞)의 대표작 ‘심야식당’에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이들은 대부분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각자 ‘한 바닥’의 사연을 가진 사람, 삶의 무게를 진 자들이다. 때로는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는 이들에게 주방장은 (메뉴에 없어도) 이들이 원하는 요리를 만들어준다. 인생의 고단한 이야기를 요리로 푸는 심야식당은 단순히 밥을 먹는 곳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심야식당의 인기에 힘입어 우리나라에도 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놓고 영업하는 동네의 작은 식당이 많이 생겼다. 대낮에 밥을 먹는 것보다 좀 천천히 먹어도 되고 혼자 와서 조용히 먹다 가도 될 만큼 분위기는 다소 여유롭다. 심야식당은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서울 강남구 선릉로 ‘루이쌍끄’도 이와 비슷한 식당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요리사 이유석 씨(34)는 밤늦게까지 음식을 만들며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가 쓴 에세이집 ‘맛있는 위로’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 이야기 모음집이나 다름없다. 그는 “괜찮아, 다 그런 거야”라는 말 대신 계란말이 같은 음식들을 만들어 손님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 씨가 만난 손님 중에는 꿈을 잃어버린 40대 정보기술(IT) 회사의 간부가 있다. 럭셔리 브랜드의 정장을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정돈한, 잘나가는 직장인이지만 그는 쳇바퀴 돌 듯 이어지는 직장 생활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는 결국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 씨에게 요리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이 씨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는 생애 처음으로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만들었고, 그 길로 그는 요리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프랑스로 날아갔다. 가면을 벗고 자신의 ‘진짜 얼굴’을 찾은 것이다. 그런 그를 보고 저자는 “열정이란 나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안한 미래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오늘도 늦은 밤 동네 식당을 찾는다. TV에는 ‘먹방(먹는 방송)’이 나온다. 어쩌면 우리는 먹음직스러운 요리보다 그 뒤에 숨겨진 위로를 더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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