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油化 ‘원샷법 구조조정’ 물 건너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9일 03시 00분


대기업 빠지면 법안 유명무실

일본 전자업체 소니, 도시바, 후지쓰는 내년 4월 각 사가 지분 30% 안팎을 갖는 ‘3자 합작사’를 설립해 PC사업을 통합한다고 4일 발표했다. PC 시장이 줄어들면서 출혈 경쟁을 벌이게 되자 선제적으로 내놓은 해법이다. 소니는 이날 도시바의 카메라이미지센서(CIS) 사업을 190억 엔(약 1805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통합이 이뤄지면 간접비 삭감과 부품 조달 협상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전자업체들이 발 빠르게 산업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아베 신조 총리 체제에서 더욱 강화된 사업재편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 정부는 기존 ‘산업활력재생법’(1999년 제정)의 지원 폭을 확대한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지난해 초 시행했다. 기업들이 인수합병(M&A) 등에 나설 때 관련 세금을 줄여주고 채무 보증을 제공하는 등 사업 재편을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이러한 정책은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 처리를 추진하고 있지만 만약 야당의 주장대로 대기업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누더기 법안’이 돼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이 많다.

8일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국내 고순도 테레프탈산(TPA) 생산 공장들의 평균 가동률은 올해 1∼10월 77.8%에 불과하다. 중국 내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수출량이 해마다 크게 줄어들고 있어서다. 화학섬유와 페트병 등의 원료로 쓰이는 TPA는 석유화학 제품 중에서도 공급 과잉이 가장 심각한 품목이다. SK유화, 롯데케미칼, 삼남석유화학 등은 지난해부터 잇달아 TPA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거나 다른 제품 생산라인으로 전환하고 있다.

철강업계도 마찬가지다. 동국제강은 2월 자회사인 유니온스틸을 흡수합병한 데 이어 8월에는 포항 후판공장(연산 190만 t) 가동을 중단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12월 포스코특수강을 세아그룹에 매각했다. 공급 과잉으로 인한 업계 구조조정은 이처럼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철강업계는 원샷법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도산 위기에 처한 중소·중견 강관 및 합금철 업체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해 왔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발 공급 과잉과 경기 침체로 빚어진 불황을 극복하려면 기업 간 사업 재편의 ‘촉매제’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7월 국회에서 발의된 원샷법은 공급 과잉 업종의 사업구조 재편을 돕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야당이 ‘원샷법=재벌 특혜’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만약 원샷법 지원 대상에서 ‘자산 5조 원 이상 대기업집단’이 제외된다면 석유화학업계나 철강업계 구조조정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격론 끝에 마련한 법이 사실상 ‘유령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제조업체 5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대기업의 88.0%, 중소·중견기업의 75.4%가 사업재편 지원제도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원샷법이 통과될 경우 대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법을 활용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은 국내 주력 산업이 중국으로 이전하는 큰 변화의 시기로 기업 간 M&A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며 “외국과 달리 국내만 이런 사업재편 및 구조조정을 돕지 못하면 결국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황태호 기자
#법안#원샷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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