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북받쳐 오른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2011년 인수할 때만 해도 ‘무모한 도박’이라던 SK하이닉스가 아니었던가. 어느덧 SK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거듭난 회사가 또 다른 도약을 선언하는 자리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그로선 2년 7개월 만의 경영 복귀 후 첫 대외 공식 행사였다.
8월 25일은 박근혜 정부로서도 의미가 깊은 날이었다. 정확히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에 선 날이었기 때문이다. 전날 남북 고위 접촉에서 북한의 지뢰 도발에 관한 사과 합의를 이끌어내 국정 하반기에는 경제에 ‘다 걸기’ 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됐다.
이날 경기 이천시 부발읍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M14 준공식 및 미래비전 선포식’은 이처럼 SK그룹과 정부 모두에 상징성을 갖는 행사였다. 이를 반영하듯 박 대통령,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윤성규 환경부 장관, 남경필 경기지사, 이시종 충북지사, 최 회장,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 등 참석자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SK하이닉스의 14번째 라인이라는 뜻인 M14는 축구장 7.5개 크기인 5만3000m² 용지에 반도체 생산 공간만 6만6000m²(복층)에 이른다. 단일 건물 기준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라인이다. 건물에만 2조1000억 원이 들어간 이 공장에서는 최신 D램을 생산하게 된다. 2021년까지 예정된 설비 투자액만 15조 원에 이른다.
SK하이닉스는 M14 준공으로 올 3분기(7∼9월) 본격적인 2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미세공정 생산에 돌입했다. 삼성전자에 이은 세계 메모리반도체 2위의 자리를 보다 견고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 회장은 “M14는 SK그룹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것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반도체 역사를 다시 쓰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SK그룹은 이례적으로 M14 외에 국내에 반도체 생산라인 두 개를 더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천시와 충북 청주시에 각각 들어설 신규 공장에 투입되는 자금만 31조 원. M14 설비 투자비에 더하면 2024년까지 무려 46조 원을 반도체 사업에 쏟아 붓기로 한 것이다.
정부가 경제활성화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자 SK그룹이 통 큰 화답을 한 것이다. 박 대통령도 “M14 준공은 과거 낡은 규제를 새로운 기술 수준에 맞게 개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정부에서도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M14 건설 계획은 2006년 처음 수면으로 올라왔지만 수도권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었다. 건설 허가가 난 것은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인 2013년에 이르러서였다. M14 준공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이 직접 ‘장애물 제거’를 약속함으로써 SK그룹이 향후 세울 M15, M16은 규제에 대한 부담을 한층 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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