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트 수주 막힌 조선 ‘암울’… 중동 붐 식은 건설도 ‘몸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0일 03시 00분


‘저유가의 저주’ 국내 업계 빨간불

국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로 떨어지면서 국내 산업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가뜩이나 어려운 조선·철강업종이 직격탄을 맞은 데다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이자 대규모 공사의 발주처인 중동 국가들도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저유가로 일부 이익이 늘어나는 업종이 있지만 유가 하락으로 물가 하락이 장기화하면 전 세계가 디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며 “20일부터 공식 발효되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한국 산업계가 새로운 활로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조선·철강업종

구조조정 논의가 한창인 조선업계는 초유의 유가 하락 사태로 설상가상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의 주력 분야인 해양플랜트 수주가 직격탄을 맞게 된 탓이다. 해양플랜트는 바다에 매장된 석유나 가스 등을 발굴·시추·생산하는 시설이다. 조선업계는 유가가 배럴당 60∼80달러는 돼야 오일메이저들이 해양플랜트를 발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은 올해 해양플랜트를 단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삼성중공업이 총 6건의 해양플랜트를 수주했지만 이 중 3건은 내년 하반기(7∼12월)에 발주처에서 상황을 판단해 진행한다는 ‘조건부 계약’이었다. 원유개발 사업이 중단되면서 기존에 계약된 드릴십과 반잠수식 시추선 등 ‘시추설비’도 계약 취소와 연기가 잇따랐다.

조선업계를 주요 공급처로 삼고 있는 철강업계에도 후폭풍이 불고 있다. 철강 수요가 감소하는 데다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제품가격을 내리라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단기적으로 유가가 하락하면 원자재 가격이 하락해 이익이 커졌지만 현재는 저유가가 장기화하면서 제품가격까지 동반 하락한 데다 산유국으로의 수출 감소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 사라진 오일머니에 중동특수 사라져

올 들어 중동 발주처들이 저유가 여파로 석유 플랜트 사업 등의 물량을 줄이거나 사업을 취소하면서 국내 건설업계도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카타르 석유공사는 85억 달러(약 10조 원) 규모의 알카라나 석유화학단지 프로젝트를 무기한 연기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도 20억 달러 규모의 라스 타누라 석유화학 플랜트의 시공사 선정을 중단한 상태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일까지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약 427억3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 전체 해외건설 수주액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던 중동 지역 수주액이 올 들어 9일 현재 147억3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으로 감소한 영향이 컸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저유가로 자금 사정이 악화된 산유국 발주처들이 공사 대금을 제때 주지 않는 일도 있어 해외 사업 여건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 석유화학업계는 명암 엇갈려


저유가가 정유업체들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유가가 급락했을 때 정유업체들은 사상 최악의 실적을 냈지만 저유가가 장기화하면서 올해는 SK이노베이션 등 정유 4사의 올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4조509억 원이나 된다.

저유가로 이익이 급증한 것은 정제마진 덕분이다. 정제마진은 원유를 정제해서 나온 석유제품가격에서 원유가 운임 등을 제외한 이익이다. 정유업체들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2011년 정제마진은 배럴당 평균 8.2달러. 올해 유가가 40달러까지 빠지는 상황에서도 정제마진은 꾸준히 7∼8달러를 유지했다.

화학업체들도 올해 이익폭이 컸다. 제품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원가 감소폭이 더 컸기 때문이다. 국내 상장 화학 9개사 매출액은 올해 3분기까지 전년보다 19%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325%나 증가했다. 중국 석탄화학공장 증설이 지연되며 전체적인 공급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

하지만 원유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거나 저유가가 장기화하면 석유화학업계 역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1달러 하락할 때 정유 4사의 재고 손실은 4500만 달러에 이른다. 화학업계 역시 저유가의 장기화로 인한 제품가격 하락 압박을 우려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저유가는 호재가 아닌 악재에 가깝다”며 “저유가로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샘물 evey@donga.com·천호성·최예나 기자
#플랜트#수주#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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