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전자업체인 삼성과 LG가 이달 9일과 지난달 27일 각각 단행한 2016년도 조직개편에서 자동차 전장(電裝) 부품 사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삼성전자는 전사 조직으로 ‘전장사업팀’을 신설했다. LG는 지주사인 ㈜LG에 ‘신성장사업추진단’을 꾸리고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을 단장 자리에 앉혔다.
기존 주력사업이던 스마트폰과 반도체 등은 내년부터 성장세가 둔화되거나 역(逆)성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자동차용 전장 시장 규모는 내년 200조 원을 넘어서면서 꾸준한 성장세가 예상된다. 두 회사의 움직임에는 전자산업이 점차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가 자동차라는 공통된 인식이 있다. 하지만 승부수를 띄운 방식은 조금 다르다.
○ 삼성, 반도체·스마트폰 1등 DNA 이식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품(DS)부문장(부회장)에게 전장사업팀의 ‘경영지도’ 역할을 맡겼다. 부품사업의 ‘1등 공식’을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에 그대로 이식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해 완성차 시장에 진출했다가 4년 만에 철수한 아픈 경험이 있다. 삼성전자는 완제품 부문과 완전한 장막이 쳐진 DS부문이 전장 사업을 관장토록 하면서 완성차 시장에는 진입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우선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빠른 추격이 예상된다. 내년부터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가 꺾이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꾸준한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미국 프리스케일을 인수해 몸집을 키운 네덜란드의 NXP가 1위, 독일 인피니언이 2위다. 삼성전자는 순위권에 들지 못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인터넷과 연결되는 ‘스마트 카’ 시대에는 전혀 다른 차량용 반도체가 요구된다”며 “삼성전자의 강점이 십분 발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디스플레이 역시 TV, 스마트폰과 달리 대만 이노룩스, 일본 샤프 등의 저가 제품이 현재는 주류이지만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강화되면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구글, 애플을 상대로 한 ‘플랫폼 경쟁’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자체 플랫폼 사업에서 얻은 교훈으로 스마트카 분야에서는 밀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구글과 애플은 각각 차량용 OS ‘구글 오토 링크’와 ‘카 플레이’를 내놓고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 LG, 오너 앞세워 ‘대형 독립 부품사’ 만든다
LG그룹은 2013년 LG전자에 기존의 카(car)사업부와 에너지부품사업부, 자동차 엔지니어링 계열사인 V-ENS를 통합한 VC사업본부를 신설하며 삼성보다 한발 앞서 자동차 전장 사업을 본격화했다. LG전자는 모터, 인버터, 컴프레셔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가전·모바일 사업을 통해 닦은 경쟁력을 기반으로 각종 부품을 판매한다. 이 외에도 LG디스플레이가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제조하고 LG화학이 전기차용 배터리, LG이노텍이 카메라·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등을 만든다. 사실상 차체 외관 이외의 거의 모든 부품을 제공하는 셈이다.
재계에선 LG가 독일의 콘티넨탈이나 보쉬처럼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독립된 ‘티어1(tier1·1차부품협력사)’로 대형화를 노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을 맡은 구 부회장은 사실상 여기에만 집중하면서 ‘자동차기업 LG의 오너’ 역할을 할 전망이다. 자동차 사업은 준비와 개발 기간 등을 합치면 하나의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수익 발생까지 최소 5년 이상 소요된다. 재계 관계자는 “완성차 제조사들에는 오너인 구 부회장이 임기가 짧은 전문경영인보다 훨씬 높은 신뢰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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