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로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부채 위험을 지적하고 나섰다. 어제 한국은행과 공동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딩딩 IMF 아태국 선임연구원은 “일부 아시아 국가의 부채 위험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했다”며 “한국의 가계대출도 향후 이자율 상승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기업에 대해서도 “대출이 소수 회사에 집중돼 있어 향후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위험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아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우리에게 IMF의 경고는 무겁게 다가온다. 그해 9월까지만 해도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한국은 태국 통화위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이 안정적 거시경제정책을 유지하고 금융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 정부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 사회적 혼란에 안정적 거시경제정책 유지도, 금융개혁 추진도 하지 못했고 결국 ‘IMF 사태’를 당해야 했다.
지금도 정부는 2016년에 처음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넘게 되는 한국의 국가채무에 대해 “문제없다”고만 말한다. 하지만 한국은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등 민간부채에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부채까지 합치면 GDP 대비 286%나 되는 ‘채무 공화국’이다. 중국의 282%보다 높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5, 16일 회의에서 7년 만에 금리를 올리면 국내 시중금리가 따라 올라가 부채가계의 추가 이자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만약 집값까지 떨어지고 아파트 집단대출에서 연체가 속출할 경우 소비 위축은 물론이고 금융권 부실, 실물경제 악화, 외국자본 이탈까지 일파만파로 번질 우려가 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복귀를 앞둔 그제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대내외 여건을 다 짚어 봤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작년 7월 부임한 최 부총리가 내수 활성화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 완화 등으로 2012년 말 964조 원이었던 가계부채는 최근 1166조 원까지 늘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도 13%에서 전체 기업의 15.2%로 증가했다. ‘빚으로 쌓아올린 반짝 경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내년 1월부터 은행 주택담보대출 심사를 강화할 방침을 밝혔으나 정부 일각에선 부동산 불씨를 꺼뜨린다며 반대하는 등 엇박자가 심각한 상황이다. 부채에 대한 경고가 계속되자 금융위는 다음 주 다시 관리대책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관가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가 대출심사 강화를 반대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경기 연착륙을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되 ‘부채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거듭된 위험 경고를 듣고도 선거 때문에 손 놓고 있다가 또 위기를 맞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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