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항, 산업-물류 연계 ‘동양의 로테르담항’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4일 03시 00분


해수부, 개항 30년 새 비전 제시

성장이 정체됐던 전남 광양시 광양항이 국내 최대 산업클러스터항이자 동북아 자동차 환적 중심기지로 탈바꿈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을 벤치마킹해 광양항을 재도약시키는 내용의 중장기 전략을 밝혔다. 사진은 광양항 전경. 해양수산부 제공
성장이 정체됐던 전남 광양시 광양항이 국내 최대 산업클러스터항이자 동북아 자동차 환적 중심기지로 탈바꿈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을 벤치마킹해 광양항을 재도약시키는 내용의 중장기 전략을 밝혔다. 사진은 광양항 전경. 해양수산부 제공
네덜란드 제2의 도시, 로테르담에 위치한 로테르담 항은 유럽 북서부 해상 물동량의 37%를 담당하는 유럽 최대, 세계 8위 규모의 항만이다. 육상·해상 물류 인프라와 배후산업단지의 연계 발전을 통해 신성장산업 육성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총 126km²에 달하는 항만구역 내에 60km² 규모의 산업단지가 자리 잡은 가운데 석유화학 터미널 6개, 컨테이너 터미널 8개 등의 시설이 함께 있다. 로테르담 항의 항만 관련 직접 부가가치는 2013년 기준으로 125억 유로, 고용은 9만4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네덜란드 경제의 핵심이다. 올 10월 로테르담 항을 둘러본 정성기 해양수산부 항만지역발전과장은 “항만 현장을 둘러보니 광양항도 로테르담 항 못지않게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 로테르담 항이 있다면 한국에는 광양항이 국내 최대 항만으로 도약하기 위한 비전 실천에 나섰다.

해양수산부가 8일 국무회의에서 발표한 ‘광양항 활성화 및 중장기 발전 방안’은 4만 명의 고용 효과를 내면서 지역경제를 이끌고 있는 광양항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종합 처방이다. 정부는 매립지를 활용한 기간산업 및 물류 복합 클러스터 조성, 자동차 환적 중심기지 육성 등을 중심으로 하는 광양항의 신(新)비전을 밝히며 성장 가속화를 위한 돌파구 찾기에 돌입했다.

전남 광양시와 여수시에 걸쳐 있는 광양항은 1986년 개항과 함께 부산항과 더불어 대형 컨테이너 항만으로 ‘양항(兩港)’ 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부산항은 물동량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한 데 비해 광양항은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뎠다. 인천항도 중국 특수에 힘입어 물동량이 크게 늘고 있다. 광양항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광양항의 컨테이너 부두는 최근 제철 및 조선업 등을 중심으로 하는 배후 산단 성장세의 둔화로 연간 200만 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안팎의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데 그쳤다. 이는 광양항의 최대 처리 규모인 420만 TEU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반면에 광양항 일대 산업시설 부지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또 삼국시대부터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활약했을 정도로 지리상 요지에 위치해 있고 현재도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주간선 항로상에 있어 활용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감안해 먼저 광양만권에서 유일하게 기존 산업단지와 인접해 대규모 부지를 확보할 수 있고, 항로와도 가까워 원자재와 제품 수출입에 유리한 율촌매립지를 2025년까지 석유화학, 신재생 에너지 산업과 항만 물류 기능이 복합된 클러스터로 조성하기로 했다. 광양항 내 유휴항만시설은 해양산업 클러스터로 지정해 이를 사용하는 기업에 임차료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광양항 3-2단계 컨테이너 부두 4선석을 자동차 전용 부두로 전환하기로 했다. 2009년 8만 대에서 지난해 81만 대로 10배 이상으로 급증한 광양항 자동차 화물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한 조치다. 올해 자동차 환적 화물은 126만 대로 예상돼 지난해보다 56%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자동차 환적 중심기지 육성책을 밝힌 것은 앞으로 국내에서 생산하는 자동차의 환적 패턴이 국내와 미주·유럽 간 거래(울산 평택 목포→광양→미주·유럽)에서 제3국(인도·중국→광양→미주) 등지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 전용부두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항만 서비스와 컨테이너 부두 경쟁력 강화를 바탕으로 산업 항만 본연의 기능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도 추진된다. 선박 대형화 추세에 맞춰 대형 선박이 입출항할 때 안전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광양항 입구의 암초를 제거하는 사업이 추진된다.

한편 1만8000TEU급 이상 초대형 선박을 수용하기 위한 대형 크레인은 2, 3년 안에 1기에서 4기로 늘어난다. 현재 24열 대형 크레인 47기가 몰려 있는 부산항과 달리 광양항에는 1기밖에 배치돼 있지 않아 초대형 선박 하역에 어려움이 있었다. 또 광양항이 컨테이너 환적 기지로 자립할 수 있는 물동량을 300만 TEU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할 때까지 선박 입·출항료와 접안료 등 항만시설 사용료(2014년 기준 277억 원)를 면제해주는 지원책을 연장키로 했다.

광양항 개발로 기대되는 효과 중 하나는 민간투자 활성화다. 정부는 율촌매립지 개발에 약 16조 원, 묘도항만 재개발에 약 6조 원 등 총 22조 원에 달하는 민간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윤학배 해수부 차관은 “광양항을 국내 최대 산업 클러스터 항으로 육성해 연간 생산액을 현재 100조 원대에서 2025년 200조 원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 항만개발의 경제-전략적 효과 ▼

물동량 1t 늘면 부가가치 100달러 발생… 문화 -금융 -지식 등 사회발전까지 선도


항만 산업은 무역 비용을 절감하고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는 등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글로벌 항만·도시의 경쟁력에 대한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무역 당사국 두 나라가 동시에 항만 효율을 두 배로 증대하면 무역 간 물동량이 32% 증가하고 항만 물동량이 1t 증가하면 평균 100달러의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인구가 많은 세계 상위 20대 도시 가운데 13곳이 항만 도시라는 결과도 있다. 미국 뉴욕 샌프란시스코, 홍콩, 일본 도쿄 등도 모두 인근에 대규모 항만을 두고 있다. 싱가포르의 싱가포르 항,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항도 모두 항만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국내 상황도 항만 개발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2013년 국내 항만물류 산업의 직접 부가가치는 22조6000억 원에 이르렀다. 화학 조선 등 직접 연관 산업을 포함하면 총 85조 원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해양레저산업 등이 확대되면 고용 규모와 경제적 가치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항만은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내 항만은 수출입 화물의 99% 이상을 처리하는 핵심 물류 인프라다. 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전략을 구상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부산항 등 주요 항만 개발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항만은 20세기 후반부터 세계화 및 교통 정보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더욱 확장되는 추세다. 선도적인 항만은 문화, 지식, 금융, 업무, 상업, 여가 등을 아우르는 자족 도시의 수준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이는 항만이 지역의 경제 사회 발전을 이끄는 핵심 요소임을 설명한다.

항만 배후 단지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과거 항만의 배후 단지는 주로 항만을 지원하는 보조시설로 개발되는 측면이 강했다. 최근에는 이런 개념이 발전돼 항만을 이끌어가는 중심 시설로 성장하고 있다. 항만 배후 단지는 기존 물류기능뿐만 아니라 제조 기능까지 통합하는 서비스, 생산의 클러스터로 성장하고 있어 앞으로 고용창출 효과가 더욱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크루즈, 마리나 시설 등 선진국형 수요가 많아지고 있는 최근 추세를 감안할 때 항만 개발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항만#광양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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