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와 전국은행연합회는 어제 1166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대책으로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수도권은 내년 2월부터, 지방은 내년 5월부터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해줄 때 소득 심사를 강화하고, 상환도 거치기간을 1년 이내로 하여 처음부터 원리금 분할 상환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시행 시기가 예정보다 늦춰지고 집단대출 같은 예외 조항이 많아 국제통화기금(IMF)도 위험성을 경고한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금융 당국은 당초 7월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발표하면서 같은 내용을 내년 1월 전국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내년부터 대출이 까다로워질 것을 예상한 사람들이 몰려 9월 은행권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 증가폭을 보이면서 가계부채가 되레 급증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코앞에 닥친 데다 11월 들어 부동산 경기마저 꺾이기 시작해 정부가 뒷북을 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구나 지방 대출을 깐깐히 심사하는 시점을 내년 총선 이후인 5월로 잡은 것은 지방 주택경기 냉각을 우려한 청와대와 정치권, 국토교통부의 속보이는 주문 때문이라는 뒷말이 많다.
가계부채 가운데 40% 정도가 주택담보대출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은 지난달 12일 회의에서 “향후 가계부채 관리 방안이 시행되더라도 집단대출이 제어되지 않으면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부담이 된다”고 우려했다. 신규 대출은 묶는다지만 기존 대출은 그대로인 데다, 신규 분양 아파트 입주 예정자를 대상으로 중도금, 이주비, 잔금 대출을 해주는 집단대출을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제외해 총부채 규모가 줄어들지 의심스럽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어제 “가계부채 대책이 주택시장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아야 하니 (금융위와 국토부의) 협업 강도를 높이겠다”면서 “내년 주택 공급 과잉을 걱정하던데 만약 공급 과잉이 생기더라도 최근 인가된 물량의 입주가 시작되는 2017, 2018년의 문제”라고 말했다. 당장은 주택 경기가 더 중요하고 문제가 생겨도 다음 정권에서 터질 것이라는 말 같다. 단서와 예외 조항이 많아 실효성이 의심되는 이번 대책이 표류하면서 무책임하게 다음 장관, 다음 정권으로 ‘폭탄 돌리기’를 하게 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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