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만827명의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받은 급여의 평균은 9700만 원. 이들의 근속연수는 16.9년이다. 현대차의 경쟁 상대인 일본 도요타의 직원 평균 근속연수는 15.8년으로 1년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평균 급여는 7700만 원으로 2000만 원이 적다. 평균 근속연수가 23.5년이나 되는 혼다의 급여 평균액은 7100만 원이다.
세 회사의 평균 근속연수를 같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현대차의 평균 급여는 도요타보다 18%, 혼다보다는 무려 90%나 많다. 일반적으로 근속연수가 길수록 급여가 상향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같은 연차의 현대차 직원들은 혼다에 비해 두 배 가까운 급여를 받고 있는 셈이다.
한국 대기업들이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주요 업종에서 일본 경쟁사에 비해 급여 지출이 훨씬 큰 ‘고임금의 늪’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들의 근속연수에 대비한 급여 지출이 일본보다 훨씬 큰 것이다. 두 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차이까지 감안하면 실제 노동생산성의 차이는 더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가 23일 한국과 일본의 시가총액 100대 기업의 분기 보고서를 분석해 근속연수 및 급여를 비교한 결과, 지난해 기준(일본은 지난해 4월∼올 3월)으로 한국 기업의 평균 근속연수는 9.2년으로 일본의 15.8년보다 6.6년이 짧았다. 급여 수준은 한국이 평균 6680만 원, 일본은 8170만 원으로 1490만 원의 차이를 보였다.
근속연수는 한국이 일본의 58.4% 수준에 불과한 데 비해 급여는 82.2% 수준으로, 같은 근속연수로 환산할 경우 한국 기업들이 일본에 비해 38%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일본 업체들과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 분야의 경우 근속연수는 12.8년으로 일본보다 4.6년이 짧지만, 평균 급여는 8330만 원으로 일본(6830만 원)에 비해 오히려 1500만 원이나 높았다. 같은 근속연수로 환산할 때 국내 자동차 기업들의 급여 지출은 일본 기업들보다 66.4%나 높다. 심각한 부실에 빠져 있는 조선·기계·설비 분야도 마찬가지다.
국내 대기업들의 고임금 구조는 제품 원가 경쟁력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원가를 낮추기 위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연차가 높은 숙달된 직원이나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줄여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고임금의 대기업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소비가 위축되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는 “고임금 구조가 기술경쟁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며 “일본이 불황을 극복한 것은 임금 인상 대신 원가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유지를 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시총 상위 100개 기업을 통틀어 지난해 평균 급여가 가장 높은 기업은 카카오(1억7400만 원)로 나타났다. 일본 1위인 전자설비 기업 키엔스(1억5200만 원)보다 2200만 원이나 많았다. 이에 대해 카카오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하면서 지급된 상여금과 직원들이 행사한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등이 포함된 수치”라고 설명했다. 평균 급여 국내 2위 기업은 신한지주(1억700만 원)였고 삼성전자(1억200만 원)는 공동 3위였다.
근속연수는 일본 혼다가 23.5년으로 가장 길고, 한국은 기아차와 한국전력이 18.7년으로 1위였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은 임금피크제 등을 통해 고령화사회에 맞는 노동구조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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