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금리 인상과 따로 간다는 韓銀, 자본유출 막을 자신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5일 00시 00분


한국은행이 어제 금융통화위원회 개최 후 발표한 ‘2016년 통화신용정책 운영 방향’에서 “국내 경제의 회복세가 완만하고 물가도 상승 압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지난주 기준금리를 올린 뒤 “향후 점진적인 상승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은은 돈줄을 조이지 않고 미국과 따로 가겠다는 의미다. 그제 이주열 한은 총재가 “미국의 금리 인상이 곧바로 한은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연장선상이다.

한국 경제가 1200조 원이나 되는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을 안고 있는 데다 수출 부진 장기화와 내수 회복세도 장담하기 힘든 난국임을 감안해 확장적 경제정책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과 환율 변동 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내년 통화정책의 기조를 ‘완화’라고 미리 족쇄를 채운 것은 경솔했다는 판단이다.

미국 금리 인상 이후 글로벌 금융질서는 시계 제로의 안갯속이다. 미국이 달러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한 신흥국에 외환위기가 터지면 도미노 식으로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선 한은만 언제까지나 완화적 통화 기조를 고집할 수는 없다. 유럽과 일본이 계속 돈을 푼다지만 이들의 통화는 기축통화여서 독자 노선을 추진한다고 해서 자본이 대거 이탈할 위험은 크지 않다.

한은이 완화적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내년 초 신흥국 위기 가능성이 지금보다 크게 증폭되면 한은은 금방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그러면 “중앙은행이 말을 쉽게 바꿨다”는 비판이 나올 게 뻔하다. 금리 정책은 선제적이어야 한다. 신흥국 위기가 터지기 전에 금리를 올려야 자본 유출을 막을 수 있다. 한은은 2008년 금융위기 때 한국에 닥쳐올 파장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고 위기 대응도 신속하지 못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후에도 소비 위축을 가만히 두고 보다가 8월에야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 부양의 적기를 놓친 뼈아픈 기억도 생생할 것이다.

이렇게 ‘마이웨이’를 공언하면서도 한은은 기준금리를 정하는 금통위 횟수를 연간 12회에서 2017년부터 미국처럼 8회로 줄일 계획이다.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칠 때 시장을 더 자주 모니터링하며 국내 정책을 조율해야 한다는 상식을 굳이 거스르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은 정부의 경기 부양 노래에 박자를 맞추기보다는 글로벌 자금 동향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돈을 흡수할 묘수를 짜낼 때다. 이번에 ‘불확실성에 대비해 통화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정도면 충분했다.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한은이 너무 앞서가다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한국은행#통화신용정책#미국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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