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결혼한 새신랑 최학룡 씨(32)는 성탄절인 25일도 평소처럼 오전 8시에 출근해 운전대를 잡았다. 학룡 씨는 인터넷 전자상거래회사 쿠팡에서 배송직으로 일하는, 이른바 ‘쿠팡맨’이다. 트럭을 몰고 인천 계양구 동양동 일대를 돌며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게 그의 일이다.
그는 동양동 주민들에게 ‘그림 그려주는 쿠팡맨’으로 불린다. 주문한 물건과 함께 직접 그린 재밌는 만화나 그림을 선물한다. 올 크리스마스엔 아이 젖병을 닦는 솔로 아내와 함께 직접 만든 손가락만 한 ‘크리스마스트리’ 50개를 나눠줬다. 주민도 살가운 그를 반긴다. 학룡 씨는 “결혼 후 첫 크리스마스를 일터에서 보내야 하지만 좋아하는 일과 가족 같은 고객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과 취업난으로 힘든 20대를 보낸 ‘흙수저’였다. 집안이 어려워 대학에 다니다가 부사관으로 입대해야 했다. 2010년 중사로 전역한 뒤 취업에 도전했다가 번번이 쓴잔을 마셨다. 억울한 마음에 “나이가 많아서…”라고 말하는 면접관에게 “그러려면 서류는 왜 받았냐”고 따진 적도 있었다. 간신히 음료회사 영업사원으로 취직했지만 돈과 실적만 따지는 일에 적응하지 못했다.
학룡 씨가 2014년 4월 쿠팡맨으로 일한다고 하자, 트럭 운전을 하는 부친은 “핸들을 한번 잡으면 평생 잡아야 한다”며 극구 말렸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일에 재미를 붙이며 꿈을 갖게 됐다. 후배 쿠팡맨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배송교육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쿠팡에는 학룡 씨와 같은 쿠팡맨 35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 6일 근무한다. 연봉은 4000만∼4500만 원 정도다. 쿠팡이 2014년 3월 자체 매입한 물품을 외부 택배회사에 맡기지 않고 고객에게 직접 24시간 이내에 배달해주는 ‘로켓배송’을 시작한 뒤 뽑은 인력이다. 쿠팡은 쿠팡맨을 2016년까지 1만 명, 2017년에 1만5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2014년 7월 이후 1년간 국내 30대 대기업이 늘린 일자리는 8200여 개다. 쿠팡은 로켓배송을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3000여 개가 넘는 일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하지만 쿠팡맨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우선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배송을 외부에 맡기지 않고 직접 하려면 투자와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쿠팡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과 관련한 법적 시비에 휘말린 게 큰 걱정이다. 쿠팡은 허가받은 화물 운송사업자가 아니므로 직접 배송을 중단해야 한다는 게 물류사업자들의 주장이다. 쿠팡 측은 “직접 매입한 제품에 한해 9800원 이상 주문 고객에게 무상 배달을 해주니 돈을 받고 화물을 운송해주는 일로 볼 수 없다”고 맞섰다. 중국집이나 치킨집 사장이 자장면이나 치킨의 배송료를 따로 받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금융 보험 보건업 숙박음식업 등의 대표적인 서비스업종의 90% 이상에 진입규제가 도사리고 있다. 쿠팡의 발목을 잡은 화물운수사업법의 진입규제도 1998년 등록제로 완화됐다가 화물연대 파업 이후인 2004년 허가제로 역주행했다. 철통같은 진입장벽에 포위된 시장에서는 신규 진입자의 진출이 제한돼 일자리를 늘리는 혁신도 기대하기 어렵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에서 진입규제가 많고, 신규 창업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고용 창출 효과도 크게 억제된다.
해외에선 아마존, 알리바바와 같은 글로벌 전자상거래 회사들이 물류혁신을 이끌고 일자리를 만든다. 반면 한국은 2003년 화물연대 파업 이후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화주-운송업체-지입차주로 이어지는 복잡한 다단계 하청 구조, 지입차주들의 수익성 및 근로조건 악화와 같은 근본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한 개가 아쉽다면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진입규제부터 시대에 맞게 새로 디자인해야 한다. 진입규제의 빗장을 단박에 열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규제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며 이해당사자 간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장기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정부 당국이 “기업들이 알아서 하라”며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거나 면피성 유권해석 뒤에 숨기만 한다면 청년 일자리는 날아가고 사회적 갈등의 불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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