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이름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증권담당 기자로 일하던 1992년이었다. 서른세 살 때 한신증권(현 한국투자증권) 최연소 지점장 기록을 갈아 치운 그는 증권가의 떠오르는 스타였다. 투자수익률과 주식 약정액이 월등히 높아 ‘미다스의 손’으로도 불렸다. ‘박현주가 지점을 옮기면 고객들도 모두 지점을 바꾼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박현주는 1997년 오랜 꿈이었던 창업을 위해 회사를 사직하고 미래에셋캐피털을 세웠다. 이듬해 자산운용사, 1999년에는 증권사도 설립했다. 외환위기로 동서증권 같은 내로라하는 증권사도 무너지던 불안과 혼돈의 시대에 잘나가던 봉급생활자에서 벗어나 자기 사업을 선택한 것은 쉽지 않은 모험이었다. 증권가 ‘샐러리맨 신화’ 주역
미래에셋은 그의 이름을 붙인 한국 최초의 뮤추얼 펀드 등으로 인기를 끌면서 급성장했다. 증권업계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그의 약진을 주목했다. 물론 영광의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내놓은 ‘인사이트 펀드’가 한때 반 토막으로 추락하면서 ‘이제 박현주도 한물갔다’는 비판도 들었다.
미래에셋이 최근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그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다. 증권업계 최강자였던 대우증권이 미래에셋에 넘어가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건’이다. 두 회사의 자기자본금을 합하면 8조 원에 육박해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한투증권 대신증권을 압도하는 대형 증권사가 탄생한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두 회사의 합병이 한국 금융투자산업 국제화의 첫걸음을 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래에셋의 약진에 위기감을 느낀 다른 증권사의 짝짓기와 증권업계 재편도 예상된다.
박현주는 2007년 출간한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미래에셋그룹을 아시아 1위의 금융투자회사로 키워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골드만삭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며 글로벌 투자은행(IB)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사실 우리 증권업계는 고만고만한 회사들이 난립해 국제 경쟁은 엄두도 못 낸다. 미래에셋과 대우증권을 합쳐도 자기자본금 91조 원인 미국 골드만삭스나 일본 노무라증권(25조 원), 중국 중신증권(18조 원)에 비하면 여전히 ‘스몰 플레이어’다.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제조업의 삼성 같은 금융회사를 만들려면 이병철 정주영 회장처럼 리더가 ‘불가능한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우증권을 인수해도 여전히 갈증이 있다는 말은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일궈낸 히딩크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기업을 ‘투자로 먹고사는 생물’에 비유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당장은 실패하지 않겠지만 천천히 도태된다”고 한 것은 재계의 3, 4세 경영자들이 귀담아 들을 만하다. ‘금융의 삼성’ 꿈도 성공시킬까
필자는 요즘 유행어인 ‘수저 타령’이 현실 반영과 함께 독소(毒素)도 적지 않다고 보지만 그 표현을 빌리더라도 박현주는 ‘금수저’나 ‘은수저’와 거리가 멀다. 지방 출신으로 대학 때 상경해 직장에서 능력으로 독보적 실적을 기록했다. 거기서 얻은 명성과 ‘충성도 높은 고객’을 기반으로 창업에도 성공해 증권업계 1위에 올랐다.
산업계나 금융계에서 한동안 ‘샐러리맨 신화’를 남긴 이는 적지 않지만 박현주만큼 신화를 이어가는 경영자는 드물다. 새로운 도전이 미래에셋을 금융투자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이 가능한 메인 플레이어로 키워나갈지, 아니면 ‘승자의 저주’로 끝나는 몸집 불리기에 그칠지 눈여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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