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는 2006년 3월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LG, SK 등 국내 주요 20개 그룹의 여성 임원을 처음으로 전수 조사했다. 당시 전체 임원 4889명 중 여성은 43명(0.9%)뿐이었다. 오너 일가의 여성 임원 10명을 제외하면 33명뿐인 것으로 나타나 기업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3일 본보 취재팀이 10년 만에 20대 그룹의 여성 임원 현황을 다시 조사한 결과 전체 임원 수는 8579명으로 늘어났으며, 이 가운데 여성 임원은 189명으로 2.2%를 차지했다. 10년 사이 전체 임원이 1.8배로 늘어날 동안 여성 임원은 4.4배로 늘어난 것이다.
○ 4대 그룹 중심으로 여성 임원 늘어
20대 그룹 가운데 여성 임원이 가장 많은 곳은 삼성그룹으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등 오너 일가 두 명을 포함해 58명으로 조사됐다.
2006년 1550명 가운데 14명에 불과하던 삼성그룹의 여성 임원은 2016년 2000명 가운데 58명으로 늘었다. 삼성의 여성 임원 비중은 2.9%로, 10년 전에 비해 2.0%포인트 늘어났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여성 임원 중에서도 최고경영자(CEO)가 나와야 한다”고 거듭 강조해온 만큼 삼성의 여성 임원은 2012년 25명, 2013년 34명, 2014년 50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이어오는 중이다. 올해 삼성의 여성 전무는 3명, 상무는 51명이다.
SK그룹은 전체 731명 임원 중 17명이 여성으로 그 비율은 2.3%였다. LG그룹은 800명 중 15명이 여성 임원으로 비율은 1.9%를 보였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여성 임원 비율은 0.9%로 4대 그룹 중 가장 낮았다.
○ 10년 전 ‘0명’에서 “많이 늘었네”
유통업계와 통신업계의 여성 임원 약진도 눈에 띄게 나타났다. 신세계그룹은 6.7%(134명 중 9명)로 여성 임원 비중이 20대 그룹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고 이어 CJ그룹이 5.1%로 4위를 차지했다. 신세계는 10년 전 여성 임원이 오너 일가 1명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0%에서 출발한 것이라 크게 변화했다는 평이다. CJ 역시 10년 전엔 여성 임원이 오너 일가 1명뿐이었는데 10년 만에 12명으로 늘었다. KT는 2006년 상무보를 포함해 전체 312명 임원 가운데 여성은 5명뿐이었지만 2016년에는 429명 중 26명, 6.0%로 조사돼 3위를 차지했다.
2006년 조사 당시 현대·기아차와 포스코, GS, LS, 대림은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년 만에 현대차그룹은 여성 임원이 10명으로, 비중은 0.9%로 늘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정기 인사에서 안현주 IT기획실장(이사대우)을 공채 출신 첫 여성 임원으로 승진시켰다. 포스코와 GS 역시 10년 사이 각각 4명과 2명의 여성 임원을 배출했다.
10년 전 조사에서 여성 임원 수 공개를 거부했던 롯데와 현대중공업, 두산, 동부도 이번에는 모두 공개했다. 롯데는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20년까지 간부 사원의 30%를 여성으로 키우라”고 지시한 가운데 지난해 말 기준 여성 임원이 14명, 전체의 2.3%로 조사됐다.
현대중공업도 지난해 하반기(7∼12월) 임원 인사를 통해 이진철 상무보를 창사 이래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승진시켰다. 두산은 전체 355명 중 7명(2.0%)이 여성이었고 동부도 2013년 10월 한 명의 여성 임원을 외부에서 영입했다. 10년 전 여성 임원이 오너 일가 2명뿐이었던 한진도 올해는 대한항공 5명과 한진해운 1명으로 전체 227명 중 2.6%로 늘었다. 부영은 여성 임원이 2명에 불과하지만 전체 임원(21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5%로 가장 높았다.
반면 LS그룹과 대우조선해양, 대림은 여성 임원이 여전히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LS와 대림 측은 “업종 특성상 여성 직원 비율 자체가 낮다”라고 설명했다.
○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 멀어
10년 전에 비해서는 많이 늘었지만 국내 20대 그룹의 여성 임원 비중은 아직 100명 중 2명 수준에 불과하다.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2014년 기준 미국 페이스북의 여성 임원 비중은 25%였다. 트위터와 애플, 구글 등도 각각 22%, 18%, 16% 규모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별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미국 사회의 지적에 따라 다양성·포용성 담당 임원을 별도로 채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말 기준 런던국제증권거래소(ISE)에 상장된 상위 100개 회사의 비상임 이사 가운데 31.4%가 여성이었다. 여성 경영진은 9.6%였고 최고경영자(CEO)도 5.5%로 조사됐다.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은 ‘상장기업 여성 임원 할당제’를 도입한 덕에 2014년 말 기준 노르웨이 39.9%, 스웨덴 27.5%, 프랑스 28.5%, 핀란드 32.1% 등 20∼30%대를 오간다. 이들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삼성전자의 2014년 여성 임원 비중은 4.2%에 불과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국내 기업들도 ‘차세대 임원’이 될 여성 간부(과장, 차장, 부장)들을 폭넓게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2020년까지 여성 임원 비율 10%를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2014년 여성 간부 비중을 전체의 12.4%까지 끌어올렸다. 여성 간부 비중은 2007년 5.3%에서 2009년 7.5%, 2010년 8.0%, 2011년 9.0%, 2012년 8.3%, 2013년 11.8%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SK그룹도 16개 계열사 전체 차장, 부장 9844명 가운데 여성이 421명(4.0%)으로 여성 임원 비중(2.3%)보다 높게 나타났다. SK의 여성 차장, 부장 비중은 2012년 3.2%, 2013년 3.0%, 2014년 3.5%로 매년 늘어 지난해 처음으로 4%대를 기록했다.
SK는 2013년부터 여성 직원 비율과 여성 관리자 비율, 채용·승진·퇴직 지수, 육아휴직 이용률 등을 숫자로 체계화한 ‘W인덱스’를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고 있다. W인덱스 도입 후 SK플래닛은 지난해 채용한 신입사원의 여성 비중이 60%를 처음으로 넘어섰고 여성 팀장도 2011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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