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50대가 산업현장 주력… ‘젊은 피’ 보기 힘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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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새해 특집]
[탈출! 인구절벽/1부]<1>무너지는 ‘허리인구’

지난해 12월 30일 울산에 있는 한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의 생산라인이 집중돼 있는 울산이지만, 근로자들의 평균 연령대가 40대 중반을 넘는 경우가 많아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울산=서영수 기자 turtle@donga.com
지난해 12월 30일 울산에 있는 한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의 생산라인이 집중돼 있는 울산이지만, 근로자들의 평균 연령대가 40대 중반을 넘는 경우가 많아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울산=서영수 기자 turtle@donga.com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울산 동구에 있는 A사 공장에서는 배에 실릴 가스 저장 탱크를 조립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대형 철판을 지탱하는 건 기계가 했지만, 철판과 철판을 연결하는 정밀한 작업은 6∼8명의 사람들이 직접 철판을 밀고 당기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조립 현장에는 희끗희끗한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을 한 50대 이상의 근로자들만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철판 연결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고, 근로자들의 표정에서도 ‘힘이 달리는’ 게 역력하게 보였다.

A사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설비 자동화가 많이 이뤄졌지만 결국 정교한 작업은 대부분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며 “무거운 철판을 연결하는 것 같은 이른바 ‘정밀 중노동’은 근로자 연령대가 젊다면 더 신속하고, 쉽게 진행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 계속 줄어드는 울산의 핵심생산인구

한국 산업의 심장 중 하나인 울산은 심각한 핵심생산인구(25∼49세) 감소 현상을 겪고 있다.

울산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에너지 같은 국내 대표급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생산시설이 집중돼 있는 곳이다. 또 이 기업들과 각종 협력 업무를 진행하는 중견기업 및 중소기업들도 대거 모여 있다.

산업 중심지로서의 ‘위상’과 ‘이미지’만 볼 땐 젊은 인구 중심의 도시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울산의 핵심생산인구는 2009년 49만5000여 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한 뒤 지난해 11월 46만6516명까지 줄었다. 올해는 44만6162명으로 지난해보다 2만 명 정도 줄고 △2020년 42만8455명 △2025년 40만6003명 △2030년 37만825명 수준까지 계속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 규모 면에서 울산의 양대 핵심 기업으로 꼽히는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생산단지의 출퇴근 시간 때 볼 수 있는 근로자들은 주 연령대가 이미 40, 50대다.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7시경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 앞. 출근하는 근로자들로 붐비고 있었지만 20, 30대 직원은 소수였고 중장년층이 확실히 많았다. 산업계에서는 두 회사의 울산 지역 근로자 평균 연령대를 47, 48세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경우 울산발전연구원 경제산업팀장은 “중장기적으로 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장 위협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로 근로자들의 고령화 특히 핵심생산인구 감소를 꼽고 있다”고 말했다.

○ “기업 성장 가능성 떨어뜨릴 것”

상대적으로 인력 규모가 작은 중견·중소기업에서는 이미 핵심생산인구의 감소가 경쟁력을 훼손하는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다.

중견·중소기업들이 대거 밀집해 있는 울산 매곡산업단지에서 자동차용 부품을 생산하는 B사의 경우 기술자들의 연령이 40대 후반∼50대 중반 사이다.

최근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다양한 제작 기술이 나오고 있지만 회사는 ‘업그레이드’를 실시하고 있지 않다. 현재 제작 기술보다 효율성은 높지만 오히려 프로그램을 다루는 게 더 복잡하고, 중년 이상의 근로자일수록 배우는 데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B사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인력 고령화로 인해 원하는 만큼 빠르게 기술력을 개선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나이 든 기술자들일수록 새로운 기술이나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도 길고, 어려움도 많이 느낀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핵심생산인구의 감소는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떨어뜨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젊은 인력의 부족으로 인한 혁신 수준이 약해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울산은 국내에서 산업 수준뿐 아니라 임금 수준도 높은 지역”이라며 “이런 지역에서조차 핵심생산인구 감소 현상이 뚜렷하다는 건 그만큼 국내 기업들의 변화나 혁신 수준이 하락 중이란 뜻”이라고 말했다.

○ 울산지역 자영업자 45%가 고령화 심각

핵심생산인구의 감소는 지역경제 특히 자영업에도 상당한 부작용을 끼치고 있다.

울산 지역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핵심생산인구의 감소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매출에 타격을 받고 있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울산발전연구원이 자영업자 1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울산의 고령화 현상이 심각하고, 이로 인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45%였다.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4%에 그쳤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29일과 30일 밤 일산해수욕장(현대중공업 생산단지에서 약 15분 거리), 남구 삼산동(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 인근)과 울산대 앞처럼 음식점과 주점 등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방문했으나 ‘연말 특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썰렁한 가운데 삼삼오오 가볍게 식사나 술자리를 가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산해수욕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20, 30대 근로자들이 많던 시절에는 결혼과 출산 등의 과정 속에서 소비도 늘고 지역 경제도 덩달아 혜택도 봤지만 이제는 그런 성장동력이 완전히 식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 4년뒤엔 초중고교 798곳 문 닫아야 ▼

‘저출산의 저주’ 눈앞에… 7년뒤 軍 병력 年2만3000명 부족


‘결국은 낮은 출산율이 문제다.’

지금 같은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가 이어진다면 핵심생산인구 감소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다양한 인력 부족 현상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기준 1001만2000명 수준이었던 초등학교∼대학 학생 수는 2050년 561만8000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가동이 필요 없는 초중고교는 2020년 798개에서 2050년에는 4044개까지 5배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병력 자원 역시 지금처럼 21개월의 군 복무 기간을 유지하면 2023년부터 2033년간 연평균 2만3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농촌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농어촌에 집중돼 있는 면(面) 지역의 경우 2008년 518만 명이었던 인구가 2053년 282만 명으로 줄어든다.

특히 2020년을 전후로 국내 인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기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 산업의 성장동력 약화는 물론이고, 소비 둔화로 인한 경기 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노인 인구 증가로 인한 후세대의 부양 부담이 급격히 올라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에 따라 핵심생산인구 나아가 전체적인 인구수 회복을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출산율을 최대한 높이는 게 중요하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국이 경험하고 있는 인구 관련 문제의 대부분은 세계 최하위권 수준인 출산율에 직·간접적으로 원인을 두고 있다”며 “핵심생산인구 감소를 비롯해 대부분의 저출산 관련 문제는 결국 출산율 올리기를 토대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하는 시점이 2020년경인 것을 감안할 때 앞으로 남은 4, 5년이 인구 감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통해 2014년 기준 1.21명인 합계출산율을 2020년까지 1.5명 정도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1, 2차 기본계획(2006∼2015년)이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김두섭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1, 2차 기본계획에서 약 80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고도 저출산 해소와 관련된 특별한 성과를 못 낸 이유 중 하나는 확실한 컨트롤타워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3차 기본계획 추진 과정에서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기능과 인력을 강화하고 정책 집행 과정과 예산 운용에 대한 점검을 더욱 면밀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핵심생산인구 ::

생산가능인구(15∼64세) 가운데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인 25∼49세를 가리키는 인구학, 경제학 용어.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국가경제 활동 중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자문위원단(가나다순)=곽동욱 제일병원 산부인과 교수, 김두섭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보험금융학과 교수,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영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경우 울산발전연구원 경제산업팀장,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철규 건국대 신산업융합과 교수,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조형제 울산대 사회학과 교수
#인구#허리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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