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조선 철강 해운 등 대표 수출 산업의 경영 환경은 지난해만큼이나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지난해 12월 30일 발표한 5대 업종 구조조정안을 두고 “현실성이 결여된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산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안을 만들면서 해당 업계와 간담회 한 번 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 “돈 빌리려면 돈 채워라”
가장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은 선박펀드다. 정부는 경영난에 빠진 해운사들에 활로를 열어 준다는 명목으로 해운사들이 빚을 내지 않고 선박을 빌려 운항할 수 있도록 12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규모의 선박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선박펀드는 일반 금융회사들이 50%, 국책 금융기관이 40%, 해운사가 10%를 각각 부담하는 것으로 펀드가 돈을 대 선박을 건조하면 해운회사들이 빌려 쓰는 구조다.
그런데 이 펀드는 부채비율 400% 이하인 기업에만 지원이 이뤄진다. 부채비율이 높은 국내 1, 2위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이용할 수 없다. 지난해 3분기(7∼9월) 기준 업계 1위인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747%, 2위 현대상선은 786%다. 이 두 곳이 부채비율 400%를 맞추려면 각각 6000억여 원과 9000억여 원을 추가 조달해야 한다. 중대형 해운사 중 부채비율이 400% 아래인 곳은 흥아해운과 법정관리를 거친 뒤 각각 SM그룹과 하림그룹에 인수된 대한해운과 팬오션 정도다.
해운업은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 받은 대출금이 부채로 잡히기 때문에 운용하는 선박 규모가 클수록 부채비율이 높아진다. 금융위원회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자체적인 정상화 노력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지만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당장 현금이 없어서 어려운데 현금이 있는 기업만 지원한다는 발상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이어 “중대한 안을 발표하면서 업체들과 간담회 한 번 열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 철강 조선도 현실과 동떨어진 구조조정안
정부가 제시한 철강업체 구조조정안도 큰 그림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망간합금철 생산량을 40% 감축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망간합금철 업계 규모는 1조5000억 원도 채 되지 않는다. 이는 지난해 약 70조 원으로 알려진 국내 철강업체 총매출의 2% 수준이다. 이보다는 조선산업 침체와 중국산 철강 제품의 공세로 현재 위기에 빠져 있는 전기로 기반의 열연 및 후판, 철근과 강관 등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어떻게 올릴지에 대한 방안이 나왔어야 한다는 게 철강업계의 반응이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현실을 전혀 모른 채 구조조정안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구조조정안 또한 각 회사의 자구안을 전제로 한 STX조선해양 지원, 성동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경영 협력, SPP조선 매각 등 기존에 알려진 것 외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 사실상 ‘재탕’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조선 철강 해운 등은 한국 주력 산업인 만큼 현재의 재무구조에만 초점을 맞춘 지원보다는 미래 성장력을 염두에 둔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 ‘컨트롤타워’ 부재로 갈팡질팡
일각에서는 정교한 구조조정안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구조조정 전반을 지휘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 때문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를 주축으로 한 범정부 협의체가 발족했지만 금융위가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구조조정안을 총괄 지휘하기에는 힘이 부친다는 평가다. 일례로 지난해 10월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지원안을 놓고 금융당국은 채권단에 4조 원가량을 지원하라고 압박했지만 청와대에서 강도 높은 자구 계획과 노조 확인서 없이 자금 지원이 어렵다는 지침을 정하는 바람에 구조조정 방향을 두고 혼란이 일기도 했다.
조선 철강 해운산업의 경영 환경은 올해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올해 한국 조선산업의 수주량과 수주액이 지난해보다 각각 27%, 29% 감소해 2009년 이후 최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구조조정안을 적기에 마련해 추진하지 못하면서 관련 업체들은 자구책을 마련해 자발적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국내외 19개 계열사를 정리한 데 이어 올해는 35개사를 더 정리해 2017년까지 총 89개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청산하기로 했다. 포스코는 주요 사업을 철강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계열사들은 정리해 수익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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