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새해 특집]2016 연중기획, 구조개혁으로 희망 찾기
[한국경제, 새 성장판 열어라]<3>중국發 위기를 기회로
“한중 FTA요? 사실 걱정도 큽니다.”
지난해 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자 중국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 한인회의 고준봉 부회장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중 FTA를 계기로 한국 기업들이 중국 투자를 늘릴 수 있지만, 오히려 한국 기업이 충분한 준비 없이 들어온다면 실패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칭다오는 한때 섬유 봉제 보석가공업을 중심으로 한국 업체들의 진출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사업 등을 목적으로 들어온 한인이 18만 명까지 됐다. 하지만 중국의 기술력이 높아지고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사업을 포기하거나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이전했다. 현재 남은 교민은 6만여 명이다.
고 부회장은 “상하이(上海)나 베이징(北京) 등 대도시 임금 수준은 이미 한국과 비슷하고, 인건비가 싸다던 칭다오나 다롄(大連)도 한국의 절반 수준까지 올랐다”며 “중국이 기회의 땅이라던 공식을 다시 꼼꼼히 따져 봐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한중 FTA가 사실상 시작되는 원년인 2016년. 한국의 기업들은 중국 경제의 빠른 변화에 당혹해하고 있다. 한동안 두 자릿수의 성장을 이어가던 중국은 최근 ‘바오치(保七·7%대 성장 유지) 시대’의 마감을 선언하며 중고속 성장으로 경제노선을 조정했다. 여기에 한중일의 분업구조마저 무너지면서 부품소재를 수출하던 한국의 중소·중견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 붕괴한 한중일 분업구조
일본에서 첨단부품과 소재를 수입해 한국 기업들이 부품 모듈을 만들고 이를 노동력이 싼 중국에서 조립해 해외로 수출하는 게 수십 년간 이어진 한중일의 산업 생태계였다. 하지만 중국이 소재부품 분야에서 자국산 제품을 사용하는 이른바 ‘차이나 인사이드’ 정책을 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의 전체 무역에서 가공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만 해도 절반이 넘는 53.7%였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해 2014년에는 32.8%로 낮아졌다. 중국 기업이 대체할 수 없는 최고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다수의 한국 중소기업들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한국과 중국 제조업의 기술 격차도 점차 좁혀지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해 발표한 ‘국내 제조업의 업종별 기술 수준 및 개발동향’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의 기술력이 중국에 3.3년 앞선 것으로 평가했다. 조사 시점보다 4년 전인 2011년에 비해 0.4년 줄어든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경제동향간담회에서 “많은 전문가가 중국 수요 둔화를 우려하지만 유의해야 할 것은 중국의 산업경쟁력 향상”이라며 “중국과 한국 기업의 경쟁력 격차가 줄어드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 토종 업체 성장에 대기업도 위기
부품소재를 중국에 수출하는 중소·중견기업뿐 아니라 현지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한동안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달리던 삼성전자는 최근 샤오미와 화웨이, 비보 등의 중국 업체에 밀려나고 있다. 수년간 성장가도를 달리던 현대·기아차 역시 중국 업체의 약진으로 지난해 11월까지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1.52% 줄었다.
1997년 상하이에 1호점을 낸 이마트는 한때 매장을 28개까지 늘렸지만 중국 및 해외 업체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점포를 줄여 지금은 9개만 남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 ‘형제의 난’의 도화선이 된 것도 롯데가 중국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보면서 경영 실패 논란이 커졌기 때문”이라며 “중국이라는 거대한 내수시장 공략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해야
중국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정면대결을 피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 기업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철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 중국 기업이 진입하지 않고 있는 스마트카, 대체에너지, 바이오산업 등 새로운 영역에서 한국경제의 미래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산업군에서도 전문화되고 세분된 영역으로 들어가는 전략도 필요하다. 자동차나 전기전자 제품에 많이 쓰이는 고(高)기능성 강판처럼 한국 기업이 경쟁 우위에 있는 제품에 집중해 중국 제품과 차별화해야 한다.
일본이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 시장에 현지 법인 또는 합작 법인을 세우면서도 저비용 생산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등에 진출한 사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동남아의 임금 수준은 중국의 2분의 1∼6분의 1 수준으로 인건비가 싼 데다 시장으로서도 매력이 있다.
특히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3국을 가리키는 이른바 ‘빔(VIM)’ 지역이 빠른 성장세를 보여 새로운 성장 동력의 기점으로 꼽힌다. 베트남은 아세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에 모두 속해 소비시장은 물론이고 생산기지로도 각광받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2억5000만 명을 보유한 거대시장을 자랑한다. 미얀마는 올 3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어 경제성장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연구위원은 “현재는 한류 열풍으로 한국 제품이 경쟁력이 있지만 인기가 사라질 경우에 대비해 소비재 역시 사업영역을 좁히고 마진을 높일 수 있는 분야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 특성 다른 34개권역, 지역별 취향저격할 맞춤전략 세워야 ▼
中시장 진출 전문가 조언
정부의 수출대책 중 중국 시장 공략 방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7월에 나온 ‘수출경쟁력 강화 대책’이나 그해 12월 발표된 ‘2016년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수출지원책 역시 중국시장 공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들 대책의 상당수가 수출 부진을 타개할 근본대책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정책을 재탕하는 수준에 그쳤다. 일례로 한국무역협회가 운영하는 수출 지원 창구인 차이나데스크를 확대 개편해 판로를 개척하겠다는 방안은 정부가 수출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이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중국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동남아시아 중남미 유럽 등으로 수출대상국을 다변화하도록 정부가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對)중국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중국 경제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한국 경제도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25%에 달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중국의 성장률이 1%포인트 줄어들면 실물부문의 직간접적 경로를 통해 한국의 성장률이 0.21%포인트 둔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시장 공략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이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줄이면서 중간재 수출은 한계에 부닥친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중국 내수시장이 2020년에는 지금보다 2배가량 성장해 10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 기업들이 중국 내수 소비재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10대 최종재 수입 품목 중 한국이 일정한 점유율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디스플레이·방송기기·기계류 정도에 불과하다. 소비재의 경우 중국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고급화하고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지 않고선 시장 공략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을 강화하고 수익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을 통해 장기적으로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특히 중국을 단일시장으로 보기보다는 34개(23개 성, 5개 자치구, 4개 직할시, 2개 특별행정구역)의 상이한 시장이 있다고 인식하고, 각 지역에 맞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은영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지역별로 상이한 문화와 소비 특성이 존재하는 만큼 한국 기업들이 이를 직접 현장에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조급증을 버리고 최소 3∼5년에 걸쳐 서서히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김성규 기자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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