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00대 부자, 日은 ‘창업’… 한국은 ‘상속’

각각 5명 포함… 배경은 크게 달라, 전체 65%가 ‘자수성가형’

한국에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꿈의 억만장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 국가의 억만장자 대부분이 스스로 창업해 부를 쌓은 반면 세계 400대 부호(富豪) 안에 드는 한국의 재벌들은 모두 부모 기업을 이어받은 ‘상속형 부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4일 블룸버그통신의 억만장자 인덱스(지난해 12월 30일 기준)에 따르면 세계 부호 상위 400명 중 259명(65%)이 자수성가(self-made)형이었다. 나머지 141명(35%)은 상속(inherited)형이었다.

상위 10위는 모두 자수성가형이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아만시오 오르테가(인디텍스), 워런 버핏(버크셔 해서웨이), 제프 베저스(아마존), 카를로스 슬림(텔멕스), 데이비드 코크와 찰스 코크(코크 인더스트리),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래리 페이지(구글), 래리 엘리슨(오라클) 모두 스스로 기업을 일궜다. 이 10대 부호 중 오르테가(스페인)와 슬림(멕시코)을 뺀 8명이 미국 출신이다.

400대 부호 중 125명(31%)이 미국 출신이었는데 이 중 71%인 89명이 자수성가형이고, 나머지 36명은 상속형이었다. 400대 부호 안에는 아시아 출신이 80명 포함됐다. 이 중 70%인 63명이 자수성가형이어서 전체 평균(65%)보다 높았다. 중국 부자 29명 중 28명, 일본 출신 5명 모두 스스로 창업한 부호였다. 러시아 출신 18명 모두와 인도 출신 14명 중 9명도 자수성가형이었다. 유럽 지역 출신은 자수성가형(54명)과 상속형 부호(55명) 수가 엇비슷했다.

반면 한국은 400위 안에 포함된 부호 5명 모두 상속을 받아 일군 부였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모두 재벌 2∼3세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계층 간 이동 사다리도 작동하지 않으며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을 키우는 교육이나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전문가는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가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자녀가 똑똑하면 의사 변호사 고위공무원 같은 안정 지향형 직업을 갖게 하는 사회적 풍토도 문제”라고 말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