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서기관급 이하 공무원들이 지난해 말 ‘닮고 싶은 상사’로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두 해 연속 1위로 뽑은 데는 관료집단이 매우 정치적으로 변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들에게 최 부총리가 상사였던 기간은 2014년 7월 취임 이후 1년 반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은 2014년 말에는 5개월 남짓 된 최 부총리를 닮고 싶다고 했고, 작년 말에는 그 열망이 그저 상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최 부총리가 관직을 던지고 나가 거물 정치인이 돼 기재부 수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본 공무원들의 복잡한 소감을 한 줄로 정리하면 ‘그의 정치 행보를 따르고 싶다’가 된다. “쪽지예산 필요하시죠?”
최 부총리 취임 이후 국장 이상 간부들은 일제히 여의도로 몰려가 국회의원과 보좌진을 만났다. “국회와 소통하라”는 언론과 부총리의 주문에 따른 것이었다.
관료들은 정치권에 법안을 설명하고 설득하다 자기도 모르게 정치에 물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정책 자체보다 정치적 메시지나 법안 통과 여부가 우선시됐다. 중요 경제 현안에 정치색이 덧칠된 걸 보라. 정부 예산안에 1조∼2조 원 규모의 ‘깎여도 되는 사업’을 숨겨뒀다가 이 돈으로 의원들의 ‘쪽지예산’을 들어주는 거래를 한 탓에 올해 나라 가계부는 누더기다.
과거 정부가 전국에 이미 200여 개의 지역특구를 만들어 규제 완화를 추진해 왔는데 박근혜 정부의 독자적 지역규제 완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규제 프리존’이라는 설익은 제도를 2개월 만에 뚝딱 도입했다. 심지어 청와대 당국자는 정부에 불리한 통계 발표를 앞두고 통계청에 전화를 걸어 발표 시기를 연기해 달라는 민원을 넣었다고 한다. 소통이 아니라 정치적 거래를 한 것 아닌가.
젊은 공무원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초 정부세종청사 흡연공간에서 공무원 경력 3년이 채 안 돼 보이는 앳된 사무관들이 “너는 주형환(기재부 1차관) 라인이냐, 방문규(당시 2차관) 라인이냐” 하며 진지하게 대화하는 걸 들었다. 장차관에게 잘 보인 ‘낙하산’이 중요 보직을 차지하는 현실을 보며 체득한 슬픈 생존법이다.
정치 감각은 높아졌지만 부처의 역량은 추락했다. 지금 기재부 아무 과에 전화해서 경기동행지수를 어떻게 구하는지 물어보라. 자기 일 아니라며 옆으로 전화 돌리기 바쁘다. 이런 좁은 시야를 가진 관료라면 위기 때 머리부터 하얘질 것이다. 경제정책, 정치따라 춤출 판
정치 관료, 즉 ‘폴리크라트(Politician+Bureaucrat)’는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주무른다. 정치교수 ‘폴리페서’의 해악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폴리크라트가 늘면 정책은 정치에 따라 춤춘다. 현재 1510명인 고위공무원은 정권 교체기 때 중앙공무원교육원에 들어가 “지난 정부 방식의 생각을 깡그리 잊어라”는 교육을 받았던 선배들의 전언을 충격적으로 듣고 새겼던 사람들이다. 대선이 2년 남은 시점에 일을 벌이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소통으로 포장된 공청회로 시간을 보내며 개혁을 되레 방해할 수 있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기업 친화적 문화, 경쟁관계, 법치, 사유재산 존중이라는 4가지 요소에 국민의 짐을 덜어주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규제 완화에는 책임이 따른다. 정치에 줄 선 폴리크라트에게 이런 책임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만 소 잡는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짐을 짊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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