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임성기 약국과 한미약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전봇대가 골목골목 늘어서 있던 시절, 서울의 많은 전봇대에 붙어있던 광고지가 있었다. ‘임질 매독 임성기 약국(전화번호).’ 중앙대 약대 출신인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27세 때인 1967년 서울 종로5가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약국을 열었다. 당시로는 드물게 성병 치료약을 취급해 대박을 쳤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군복무 중 얻은 ‘쑥스러운 병’으로 고민하던 젊은 남성들에게는 구세주였다. 그는 약국에서 번 돈으로 1973년 한미약품을 창업했다.

▷평소 “제대로 된 글로벌 신약을 만들어 내는 게 평생의 꿈”이라고 강조한 임 회장은 연구개발(R&D)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미약품은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낸 2010년에도 852억 원을 R&D에 투입하는 등 지난 5년간 매출액의 15% 이상을 쏟아부었다. 1년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센터는 한미약품이 지난해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얀센 같은 글로벌 제약업체와 약 8조 원 규모의 수출계약을 잇달아 성사시키는 개가를 올리게 한 산실이다.

▷임 회장이 4일 자신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 지주회사) 주식 중 약 90만 주(시가 1100억 원대)를 2800여 명의 직원에게 무상증여한다는 ‘통 큰 보너스’ 계획을 발표해 화제다. 직원들이 받을 새해 주식 선물은 월급여의 1000%로 1인당 평균 4000만 원에 이른다. 200%의 별도 성과급을 합치면 1년 연봉을 더 받는 셈이다. 그는 “어려울 때 허리띠를 졸라매며 연구개발 투자를 가능케 한 임직원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작년 증시 불황 속에서도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기술수출 호재에 힘입어 748% 급등했다. 임 회장은 국내 주식 부호 순위 8위로 뛰어올랐다. 그가 개인 주식을 떼 내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회사의 수익으로 벌이는 보너스 잔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명물 약국’ 약사에서 출발해 한국 최초의 글로벌 제약사 경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임 회장의 결단은 기업 성장과 주가 상승의 과실을 직원들과 공유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임성기#약국#한미약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