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을 대표하는 상징적 건물의 하나인 서울 중구 세종대로(옛 태평로) 삼성생명 빌딩이 임대주택 건설 전문기업 부영에 팔린다.
8일 삼성생명과 부영그룹은 양사가 본관 사옥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매각금액은 양사 합의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지만 5000억 원대 중후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은 올해 3분기(7~9월) 안에 계약을 마무리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 시절인 1984년 완공된 이 사옥은 1976년 준공된 태평로 삼성본관과 함께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상징적 건물이다. 고(故)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애지중지했던 건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은 완공 당시 지하 5층, 지상 25층, 연면적 8만7000㎡ 규모로, 외관을 붉은 화강암으로 처리하고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저층은 쇼핑을 즐길 수 있는 플라자로 계획됐다. 사무자동화를 고려한 건축설계, 컴퓨터로 운용되는 방재설비 등이 도입된 한국 인텔리전트 빌딩의 시초로 꼽힌다.
풍수적으로도 손꼽히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은 고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사옥터를 잡거나 이전할 때 풍수에 신경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풍수연구가인 박민찬 도선풍수과학원 원장은 “풍수설로 보면 태평로 삼성 본관은 건물 입구가 동쪽으로 있고 삼성생명 등 계열사 건물이 좌청룡, 우백호 역할을 하고 있어 부와 명예, 행복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삼성생명 빌딩 인근에 1880~1890년대 근대식 백동전을 제조하던 ‘전환국(典¤局)’이 있어 ‘돈이 모이는 자리’로도 불린다.
이번 본관 매입은 이중근 부영 회장이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임대 사업으로 성장한 부영은 최근 리조트, 호텔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2004년 36위이던 재계 순위(자산 기준)은 지난해 19위로 뛰었다. 부영 관계자는 “자산가치가 있다고 보고 건물 매입을 결정했으며 구체적인 활용 계획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태평로 시대’를 상징하던 삼성생명 본사 건물이 매각되면서 삼성그룹의 터전이 ‘전자-수원’, ‘금융-서초’ 체제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이미 삼성전자 실무부서들은 대부분 수원으로 내려가 있고, 지원부서도 일부만 남기고 7월 이전까지 수원으로 이전한다. 이 자리를 삼성생명,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 금융계열사들이 메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은 앞서 건설부문과 패션부문을 각각 경기 성남시 판교와 서울 강남구 도곡동으로 옮긴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새로운 리더에 오르면서 사업구조재편이 빨라졌다”며 “사옥 재배치는 이에 따른 후속조치로 ‘이재용 시대’의 출발을 상징적으로 알리는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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