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를 잡았을 때 눈을 가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정보를 차단하거나 공포심을 키우기 위해서다. 당신이 포로로 잡혔는데 두건이나 눈가리개에 가려져 앞이 안 보인다고 생각해 보라. 그 공포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전 세계 증시가 요동을 치고 있다. ‘차이나 리스크’ 때문이다. 중국 증시는 첫 거래일인 4일 상하이종합지수가 6.86% 폭락한 데 이어 7일에도 7.04%까지 떨어졌다. 4일에는 중국 제조업 경기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밑돌면서 주가가 추락했다. 제조업 지표의 하락은 올해에도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수출 및 내수가 신통치 않을 거라는 걸 의미한다. 6일에는 위안화 가치 하락이 폭락을 부추겼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핫머니(국제 단기성 투기자금)를 포함한 외국 자본들이 환차손을 우려해 급격히 중국 금융시장을 이탈할 거라는 전망이 지배했다.
하지만 중국 증시 폭락장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공포감의 확산이다. 중국 증시는 개인투자자 비중이 80%를 넘는다. 이들이 어떤 심리 상태를 갖느냐,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장이 확 흔들린다. ‘쏠림 현상’을 피할 수 없다.
개인투자자들이 새해부터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지난해의 쓰라린 경험 때문이다. 활화산같이 뜨거운 장세를 보이던 중국 증시는 지난해 6월 12일 5,166.35로 연중 최고점을 찍은 뒤 자이로드롭처럼 수직 낙하했다. 3주 만에 32%가 빠졌다. 한몫 잡겠다며 빚을 내 증시로 뛰어든 개미(일반투자자)들은 걷잡을 수 없이 손실 폭이 커지자 이번에는 강물로 뛰어들었다. 자살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중국 정부는 “뛰어내리지 말고, 반등을 기다리세요”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하지만 이미 패닉 상태에 빠진 투자자들에겐 공허한 외침이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올해 중국 개인투자자들은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처음 도입한 서킷브레이커(주가 급등락 때 거래를 일시 정지시키는 제도)가 되레 불을 질렀다.
중국의 서킷브레이커는 대형주 중심의 CSI300지수가 전 거래일 종가 대비 ±5% 이상 등락할 경우 모든 주식 거래를 15분간 중단한다. 또 7% 이상 등락할 경우에는 마감 시간까지 거래를 완전히 중단한다. 지난해 롤러코스터 증시에서 교훈을 얻은 중국 정부가 과도한 증시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적용한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가 오히려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더욱 증폭시켰다. 4일 첫 번째 폭락장 이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서킷브레이커가 1차로 발동되자 상당수 개인투자자가 앞으로 주식을 팔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히면서 투매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7일에도 두 차례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면서 거래가 정지된 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는 긴급회의를 가졌다. 증감위는 이날 저녁 늦게 서킷브레이커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증감위 대변인은 “서킷브레이커 도입의 주요 목적은 시장에 냉각기를 줌으로써 시장의 변동성을 완화하고 중소 투자자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는데 바라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서킷브레이커가 폭락의 주요인은 아니지만 두 차례의 실행 과정에서 기대했던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서킷브레이커 발동 기준 단계에 가까워지면 투자자들이 미리 서둘러 팔아치우려는 ‘자기흡입 효과’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새 제도 도입의 대가는 너무 컸다. 새해 첫 주 중국 증시 시가총액은 약 1180조 원이 증발했다.
서킷브레이커 조치를 중단한 날 증시는 일단 안정을 되찾았다. 8일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전날보다 1.97% 상승했다.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지금 중국 개인투자자들의 심리 상태는 전쟁 중 적에 붙잡혀 두건이 씌워진 포로와 같다. 앞이 안 보이니 누가 살짝이라도 건드리거나, 조금만 이상한 소리가 들려도 기겁을 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 경제도 앞이 안 보인다는 데 있다. 중국 증시가 어떻게 변할지, 중국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국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가 휘청거리는데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