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임금 체계에 성과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금융공기업에 대해서는 예산상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연초부터 금융권에 대한 ‘거친 개혁’을 예고했던 금융당국이 공공 부문을 시작으로 강도 높은 드라이브를 본격화하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11일 “올해 인건비 예산을 평균 2%가량 증액하되 그중 절반인 1%는 각 금융공기업의 성과주의 도입 계획을 받아본 뒤 집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계획이 미진하면 예산이 집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이를 위해 조만간 금융공기업들에 전체 임금 내 성과급 비중, 인사평가에 따른 성과급 격차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뒤 각 기업의 실행 계획을 제출받을 계획이다. 대상은 금융감독원과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예금보험공사 주택금융공사 수출입은행 등이다. 정부가 이들 기업에 대한 예산 배분·심의 권한을 쥐고 있는 만큼 이를 지렛대로 활용해 금융공기업부터 제대로 된 성과주의 시스템을 갖추도록 유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이 연초부터 성과주의 확산을 위해 ‘칼’을 빼들고 나선 것은 경직된 임금체계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다. 현재 국내 은행들의 임금체계는 기본급에 성과급이 더해지는 일종의 ‘성과혼합형 호봉제’이다. 하지만 성과급 비중은 전체 연봉의 10% 안팎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성과급도 개인의 성과보다는 지점, 부서 등 조직의 실적을 바탕으로 지급된다. 개인의 실적이 저조해도 얼마든지 조직의 성과에 묻어 갈 수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이런 임금 체계가 ‘프리라이더’, ‘승진 포기자’ 등 업무 저성과자를 제대로 솎아내지 못함에 따라 결국 전체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있다. 실제 시중은행들은 매년 국내 최고 수준의 우수 인력을 채용하지만 자기자본수익률(ROE) 등 수익성 지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성과주의 확산을 위해 노조와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보이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3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금융회사들이 인사, 보수, 교육, 평가 전반에서 보신주의와 연공서열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전문성과 효율성을 중시하고 조직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성과주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의 강력한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성과주의가 확산되기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곳이 기업은행으로, 신임 노조위원장이 성과주의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금융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예산’을 무기로 압박하더라도 노조와의 대화에 속도가 붙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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