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근형]숫자 집착에 멍드는 의료한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9일 03시 00분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벌써 1월 중순이다. 목표만 세우다 시간이 훌쩍 간 기분이다. 새해 다짐을 포기하거나 “진짜 새해는 설날부터다”라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정부 부처의 1월도 비슷하다. 에너지의 8할을 대통령에게 하는 신년 업무보고에 쏟는다. 가장 핫(Hot)한 주제를 빛나게 포장하기 위한 머리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시기다.

보건복지부는 ‘의료한류를 통한 미래 성장동력 찾기’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18일 보건산업 주제만 별도의 업무보고를 진행했을 정도다. 백화점식 나열을 넘어 ‘선택과 집중’을 택한 모양새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허술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28만 명인 해외 환자를 올해 40만 명으로까지 끌어올린다는 대목이 그랬다.

지난해 의료관광 업계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중국인 의료관광객 사고 등 악재가 겹친 탓이다. 2009년 이후 매년 30% 이상 급성장하던 해외 환자 수는 2014년 26만 명에서 지난해 28만 명으로 2만 명 느는 데 그쳤다. 지난해 목표치(30만 명)보다 2만 명 낮았다. 뚜렷한 성장동력이 없는 상황에서 ‘40만 명’이라는 목표가 무리한 수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복지부는 지난해 국제의료지원법이 통과됐기에 가능한 목표라고 설명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법은 장기적으로는 유의미하지만 단기 환자 증가로 이어지기 어려운 내용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공항 등에 영어 의료관광 광고 허용’은 이미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기에 추가 환자 유입에는 제한적 효과만 있다.

40만 명 달성이 어렵다는 건 정부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외 환자 40만 명 달성은 2013년경 설정한 목표치를 추가 분석 없이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메르스 등 악재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수치에 집중하는 사이 ‘의료한류’ 현장의 어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특히 불법 브로커를 엄단하겠다는 국제의료지원법이 오히려 큰손인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정부에 등록을 하지 않고 환자를 보내던 중국 현지 에이전시 사이에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이전시들이 환자를 일본 대만 등으로 돌리면서 강남 유명 성형외과의 중국인 환자 수는 30% 이상 줄었다. 과도한 수수료를 챙기는 나쁜 브로커는 엄단해야겠지만 어디까지를 불법으로 규정할지 세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중 보건 당국자 회담 등을 통해 유커들의 깨진 신뢰를 되찾는 것도 급선무다.

숫자를 내세운 목표지향적 사고는 양날의 검이다. 때론 목표 달성을 독려하기도 하지만 어두운 현실을 가릴 때도 많다. 특히 의료한류의 성과는 단순 환자 수로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단순 여드름 치료만 한 환자와 수억 원씩 쓰는 중동의 중증환자는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40만 명’이라는 포장지가 지나치게 화려해 보여서 하는 말이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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