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건설, 대림산업, 현대건설이 2002년부터 이란에서 건설한 세계 최대 규모의 가스처리시설 ‘사우스파’ 전경. 총 공사비가 58억5200만 달러(약 7조 원)에 달했다. 동아일보DB
“이란이 경제·금융제재를 받는 동안 현지에서 ‘007작전’ 수행하듯 조심스럽게 활동했습니다. 이제야 두 다리 뻗고 적극적으로 수주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됐습니다.”
과거 한국 해외건설의 ‘텃밭’이었던 이란의 빗장이 풀리면서 건설사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경제제재 기간에도 이란에서 철수하지 않고 상황을 주시했던 건설사들은 발주처 동향 등을 살피며 ‘이란 특수(特需)’를 준비하고 있다.
○ “이란에 뿌린 씨 거두자”, 건설사들 수주 적극 모색
대림산업은 현재 테헤란 지사에서 직원 5명이 발주처 동향 등을 살피고 있다. 1975년 이란에 진출한 대림산업은 1994∼2001년 우리나라 최대 댐인 소양강댐의 10배(전력용량 200만 kW) 규모의 카룬댐 건설공사를 진행하는 등 국내 건설사 가운데 이란에서 가장 많은 공사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특히 1988년 6월 이라크 공군기가 대림산업의 현장을 폭격하는 상황에서도 현장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공사를 완성해 이란 정부와 발주처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이란 정부·발주처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 공사와 가스·석유화학 플랜트 개보수 공사를 중심으로 수주 전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GS건설은 두바이 지사에서 지사장을 겸임하던 테헤란 지사에 지난해 말 해외건설 경험이 풍부한 고참 부장급 신규 지사장을 파견했다. 또 항만 병원 도로 등 인프라 시설 수주를 위해 전문 영업 인력도 배치해 본격적인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다.
현대건설도 현지인 직원 1명만 뒀던 테헤란 현지사무소를 지난해 12월 테헤란 지사로 격상시키고 지사장을 포함해 국내 직원 2명과 현지인 직원 1명을 배치했다. 터키 이스탄불 지사에서 테헤란 현지사무소를 관리하던 체계에서 테헤란 지사가 터키까지 커버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본사에도 글로벌마케팅본부 내 CIS팀에 이란 담당자를 두고 발주 동향을 면밀히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재 기간에 현지에서 조직을 운영한 건설사들은 말 못할 고충을 겪기도 했다. 이란에서 근무했던 한 대형건설사 직원은 “현지 발주처와 면담한 뒤 현지에서 ‘한국 기업이 이란에서 사업을 재개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와 당황한 적이 있다”며 “이란 정부 등이 주최하는 박람회 등에 참여할 때 혹여 사진이라도 찍힐까 싶어 조마조마했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대림산업은 2013년 미국 의회 산하 회계감사원(GAO)으로부터 이란 에너지산업 투자기업으로 지목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미국의 이란 제재 이전에 수주해서 공사하던 사업인데도 논란이 됐다”고 말했다.
○ 옛 정(情)으론 한계, 자금 조달이 관건
이란의 빗장이 열렸지만 과거의 시공 실적과 평판만으로 한국 기업들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기간의 경제제재로 자금이 부족한 이란은 대부분의 건설사업을 민간투자 방식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건설사들은 벌써부터 국내 금융권의 지원 규모와 금리 등을 종합 검토하고, 대규모 자금 지원이 가능한 일본 종합상사 및 금융권과도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금융권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국내 기업들의 이란 진출에 70억 유로(약 9조24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일단 1분기(1∼3월)에 이란 중앙은행과 기본협약(FA·Framework Agreement)을 맺고 인프라, 발전, 철강 사업 등에 국내 기업이 참여할 경우 약 50억 유로를 지원할 계획이다.
2001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2010년 이후 제대로 영업을 하지 못한 이란 금융사인 멜라트은행 서울지점도 영업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멜라트은행 관계자는 “인프라 복구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업무를 재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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