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부실한 상품을 팔거나 불완전판매를 한 보험사의 과징금을 현재의 10배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사들에 자유롭게 상품을 설계하고 가격을 책정할 수 있게 자율성을 주는 대신 보험사가 잘못된 영업행위를 한 경우에는 처벌 수위를 높여 사후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21일 “현재는 불완전판매 등으로 적발되더라도 보험사에 부과되는 과징금이 수천만 원에 그치고 있다”며 “과징금을 10배 수준으로 인상해 부당이득을 취한 보험사가 실질적인 타격을 입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보험업법은 부당광고를 하거나 불완전판매 등을 했을 경우 해당상품을 통해 1년간 거둔 보험료의 20% 이내에서 과징금을 매기고 있다. 예를 들어 A보험사가 3년 동안 소비자가 오인할 수 있는 문구가 적힌 광고 등으로 총 75억 원의 수입보험료를 거뒀더라도 1년 동안 수입보험료 25억 원의 20%인 5억 원의 한도 내에서 과징금이 부과되는 데 그친다. 금융위원회의 1건당 평균 과징금은 2억7000만 원으로 해외는 물론이고 공정거래위원회(평균 71억2000만 원) 등 타 부처와 비교했을 때도 턱없이 낮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상반기 내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과징금 부과기준을 뜯어고칠 예정이다. 과징금 부과 대상을 ‘1년간 거둔 보험료’에서 ‘위반행위가 지속된 기간에 거둔 모든 보험료’ 또는 ‘관련 영업이익 총액’ 등으로 변경해 과징금을 키운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연간 수입보험료는 보험사가 부당행위로 거둬들인 이익을 일부만 반영하고 있다”며 “부과기준을 바꿔 과징금 규모를 10배 수준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A보험사의 경우에도 과징금 부과기준이 ‘위반행위 기간에 거둔 모든 보험료’로 바뀌면 법정 과징금 한도액이 15억 원(75억 원의 20%)으로 껑충 뛰게 된다. 실제로 공정위는 ‘관련 매출액’을 기본으로 해서 과징금을 산정한다. 위반행위로 인해 직간접으로 벌어들인 모든 돈을 관련 매출액으로 보기 때문에 과징금이 높게 매겨지는 편이다.
금융당국의 보험사에 대한 과징금 확대는 지난해 10월 내놓은 ‘보험 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 발표에 따른 후속조치다. 해당 로드맵은 규제를 풀어 상품 개발과 가격 책정을 완전히 보험사에 맡기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보험사들은 온라인 상품의 가격을 내리고, 경쟁적으로 공시이율(보험금 지급 시 기준으로 하는 이율)을 높이는 등 치열한 가격 경쟁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금융당국의 보험 규제완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다양한 상품들이 등장함에 따라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넓어지겠지만 지나치게 복잡한 상품들이 나와 불완전판매가 급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보험사에 대한 과징금 수위를 확 끌어올려 사후책임을 강화하면 이 같은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금융위가 금감원을 달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최근 보험시장 자율화로 감독 권한이 크게 축소돼 불만이 적지 않았다”며 “금융위가 금감원에 그대신 과징금이란 ‘칼’을 쥐여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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