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가격산정제 개선 요구
“기존 모든 약 기준 산정 불합리… 투자비 가산해 개발의욕 북돋워야”
복지부 “혁신적 신약은 최대한 우대”
정부가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가운데 제약업계에서는 국내 신약의 가격 산정 제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2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에 투자한 비용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이 보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신약 개발 의지를 꺾는다는 것. 제약사 관계자는 “정부가 신약 개발을 지원할 의지가 있다면 우선적으로 신약 가격 산정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제약사들이 우선 고쳐주길 바라는 것은 신약 가격을 정할 때의 기준이다. 현재는 신약이 개발되면 그 신약이 적용되는 질병을 치료할 때 쓰는 모든 약을 가격 산정의 기준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고혈압 신약이 개발되면 기존 모든 고혈압 약의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다. 기존 약 중에는 시장에 출시된 지 수십 년이 돼 가격이 많이 싸진 약도 있고, 신약보다 가격이 싼 복제약도 있다. 기준이 되는 약의 종류가 많을수록 대체로 기준 가격은 낮아진다는 의미다.
제약사는 이런 방식을 바꿔 달라고 요구한다. 동일한 원리로 작용하는 약들만 골라 그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잡아 달라는 것. 예를 들면 고혈압 치료제는 과거에는 이뇨제 방식에서 칼슘 배출을 막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가 최근에는 혈압을 높이는 물질을 세포가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최근 방식일수록 기술력이 좋기 때문에 약 복용에 따른 부작용이 적다. 이런 약일수록 시장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특허 기간이 끝나지 않아 가격이 높다. 최근에 나온, 동일한 원리로 작용하는 약들만 기준으로 삼는다면 신약 가격은 높아진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기존 방식대로 신약 가격을 결정하면 기존 치료제의 복제약보다 낮은 가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에서도 제약사가 해외에서 먼저 높은 가격으로 신약 등록을 했다면 국내에서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을 한국에서 처음 허가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쉽지 않다. 제약사들은 연구개발(R&D)에 많은 투자를 한 만큼 이를 신약 가격에 반영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한다. 제약업계에서는 ‘R&D 투자액이 500억 원 이상이고 매출액의 10% 이상을 R&D에 썼다면 가격의 60%를 가산’해주는 식으로 R&D 투자를 장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약사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신약에 대한 1차 평가를 받은 이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약가 협상을 한다. 제약사 관계자는 “이미 평가 과정에서부터 가격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건보공단과의 협상 때 R&D 비용을 반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약이 여러 질병 치료에 효과를 보여 사용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 약가를 미리 깎는 ‘사전 약가인하제도’ 또한 폐지해야 한다고 제약사들은 주장하고 있다. 적용 질병을 늘리려면 R&D 투자가 필요한데, 이 제도가 R&D 의욕을 꺾는다는 것이다.
신약 가격 산정 제도를 주관하는 보건복지부는 제약업계의 요구에 대해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 때도 밝혔듯이 혁신적 신약이면 가격 산정부터 수출 지원까지 최대한 우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국내의 낮은 신약 가격이 수출을 저해하고 R&D 동력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무리 신약이어도 효능이 기존 약과 비슷하다면, 기존 약의 가격을 기준으로 가격을 매기는 게 타당하다. 또한 그런 신약은 어차피 해외에서 많이 팔리기 힘들다”고 밝혔다. 신약 가격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신약이 기존 약과 비교해 얼마나 뛰어난지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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