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또 줄였지만… 서울시, 장충동 한옥호텔 4번째 제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2일 03시 00분


[지자체 규제에 가로막힌 서비스산업]

호텔신라가 현 호텔 건물 옆 면세점 자리에 지으려는 한옥호텔 조감도.
호텔신라가 현 호텔 건물 옆 면세점 자리에 지으려는 한옥호텔 조감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21일 한옥 호텔을 짓겠다는 호텔신라의 계획에 4번째로 제동을 걸었다. 별도 부지가 아니라 서울 중구 동호로 현 신라호텔 면세점 자리에 새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이 네 번이나 신청 거부된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시는 이날 공식적으로 “건축과 교통계획 등을 추가 확인해 한옥 호텔 건립 허용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심의에 참여한 도시계획위 위원들은 ‘문화재 보호’를 이번 보류의 중요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이들이 보호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문화재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추모하던 절인 ‘박문사(博文寺)’다.

○ 이번엔 ‘이토 히로부미’ 사찰이 문제

호텔신라는 지난해 10월에 4번째 한옥 호텔 건립 신청서를 내면서 3차 때까지의 계획을 대폭 바꿨다. 우선 주변 경관을 가릴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규모를 축소했다. 8개 층(지상 지하 각 4개 층)이던 것을 6개 층(지상 지하 각 3개 층)으로 줄였다. 건물 최고 높이도 15.8m에서 현재 면세점 높이와 동일한 11.9m로, 객실도 207개에서 91개로 변경했다. 그동안 “서울 성곽과 건물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자 한옥 호텔과 서울 성곽 사이 거리도 기존 20.5m에서 29.9m가 되도록 했다.

이달 20일 개최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회의에 참여한 복수의 위원들에 따르면 이번에는 문화재 보호에 대한 문제가 새로 제기됐다. 주요 논의 대상이 1945년 광복 전까지 신라호텔 자리에 있던 박문사다. 한 위원은 “박문사 역시 식민지 역사를 담은 ‘네거티브 헤리티지’(부정적인 유산)인 만큼 안내판만 세울 게 아니라 현황 파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참여 위원 역시 “해당 유적 보존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위원들이 합의했다”고 전했다. 도시계획위원회는 소위를 구성해 박문사 현장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 “보완해도 ‘반려’ 도돌이표”

호텔신라 측은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호텔신라는 이번에 한옥 호텔 규모를 크게 축소하며 수익성을 포기하는 ‘강수’를 뒀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한양 도성을 보호하기 위해 이격 거리도 늘리고 건물 높이도 낮췄다”며 “5년 전부터 신청했는데 지금 이토 관련 문화재 조사를 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서울시가 총선을 앞두고 ‘재벌 특혜’로 비칠 수 있는 호텔신라 건축 허가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 호텔신라의 한옥 호텔 건립 계획에 면세점 확장 계획이 포함된 만큼 허가를 보류했다는 관측이다.

호텔신라는 지금의 신라면세점 자리에 한옥 호텔을 세우고 현재의 주차장 자리에 기존 면세점보다 40% 이상 규모가 큰 면세점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호텔신라 측은 “내부적으로 면세점 용도로 쓰겠다는 것이지 관세청의 허가를 받은 것이 아니다”라며 “특허를 받지 못하면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 서울시 “부결 아냐, 추가 논의할 것”

반면 서울시는 이 같은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서울시 측은 “신라면세점의 확대 때문에 계획을 부결시켰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한국 전통 호텔이라는 개념이 서울에 처음 도입되는 만큼 면밀하게 검토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20일 회의에서는 호텔신라 계획안의 부대시설이 지나치게 큰 점도 논란이 됐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시 조례에 따라 서울시 공무원 5명, 서울시의회 의원 5명, 도시계획 관련 분야 전문가 19명 등 총 29명으로 구성된다. 이날 회의에는 20명이 참석했다. 한 참석 위원은 “객실은 90개에 불과한데 주차장에는 대형 버스만 55대를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사실상 호텔보다 면세점 비중이 더 큰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이 밖에 교통 흐름 문제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 규제 문제를 총괄하는 국무총리실은 “면세점을 늘리는 것은 기업의 판단이며 건축 심의 단계에서 허용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그런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면 지자체의 월권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번 보류 조치가 ‘반려’가 아니라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규에 맞지 않으면 반려 조치를 내리지만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의 보류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한옥 호텔 건립 보류를 주목하고 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호텔 등 서비스업 육성 대책까지 내놨지만 국회나 지자체 단계에서 표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당국자는 “관광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큰 문제가 없다면 호텔 건립이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호텔신라 측은 “한옥 호텔과 면세점 확대로 1000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서울시에서 명확한 이유를 전달하면 보완해 건축허가를 재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재명 jmpark@donga.com·김민 / 세종=손영일 기자
#규제#서비스#서비스산업#한옥호텔#박문사#신라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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