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회삿돈이나 비자금 등을 빼돌린 것으로 의심되는 역외탈세 혐의자에 대해 국세청이 일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에는 국내 30대 대기업 계열사의 오너 일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27일 역외탈세 혐의가 있는 법인 관계자 및 개인 30명을 상대로 고강도 세무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해외에 세운 유령회사와 편법으로 거래한 뒤 자금을 빼돌렸거나,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불리는 외국인 기관 투자자로 위장해 국내에서 거둔 투자소득을 해외로 유출한 법인 등이 중점 조사 대상이다.
● 부친 회사 비자금으로 호화주택 구입하기도
지난해 세무조사를 받은 중견기업 사주 아들 A씨는 당국에 걸린 대표적인 탈세범이다. A씨는 세금을 신고·납부하지 않고 아버지가 갖고 있던 100만 달러(약 12억 원) 가량의 미국 캘리포니아주 호화주택 여러 채와 해외 주식 및 채권 1000억 원 어치 가량을 차명으로 물려받았다. A씨는 아버지가 비자금으로 조성했던 이 재산들을 처분한 뒤 자금 일부를 국내로 들여왔다. 그는 서울의 고급주택에 거주하며 비싼 수입차를 몰고 명품 쇼핑을 일삼았다. 변변한 소득도 없이 씀씀이가 큰 것을 수상히 여긴 국세청은 세무조사로 A씨의 역외탈세 사실을 밝혀내 상속세 및 소득세로 약 600억 원을 추징했다.
중소 제조업체 대표 B씨는 홍콩에 서류상의 유령회사를 세운 뒤 제품을 수출할 때 꼭 이 유령회사를 거쳐 거래를 했다. B씨는 수출대금을 유령회사로 받은 뒤 별도의 차명계좌를 개설해 비자금을 조성했다. 국세청은 B씨에게 세금 포탈에 따른 추징금 수십억 원을 추징하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배임죄를 적용해 조세범칙조사를 실시, 검찰에 고발했다.
도매 유통업자 C씨는 해외 자원개발을 하겠다며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회사 자금을 송금했다. C씨는 페이퍼컴퍼니 소유의 해외법인 지분을 팔아 얻은 자금을 별도의 차명계좌에 넣어둔 뒤 개인 용도로 썼다. 국세청은 C씨가 조세회피처에 비자금을 숨긴 혐의에 대해 소득세 수백억 원을 매겼다.
이처럼 다양한 수법으로 세금을 빼먹다가 걸린 역외 탈세자가 지난해에만 223명에 달했다. 국세청은 이들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실시해 세금 및 가산세 등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1조2861억 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2012년(8258억 원)과 비교해 3년 만에 추징액이 55.7% 늘어난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기업 규모가 커지고 해외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역외탈세 규모가 늘어나고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 “올 세무조사 타깃은 역외탈세자”
세무당국은 3월 역외소득 및 재산 자진신고 기한 마감을 앞두고 역외탈세 혐의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증과 처벌을 예고했다. 세무조사 여부에 대해 외부에 알리는 것을 극히 꺼리는 국세청 조사국이 이날 브리핑을 자처하며 조사 착수를 공표한 것 자체가 당국의 역외탈세 근절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국세청 측은 “혐의가 있는 기업 및 사주 일가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조사 강도가 높을 것”이라며 “금융거래 추적조사, 빅데이터 조사, 거래처 조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세무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환수 국세청장은 2014년 8월 인사청문회에서 “역외탈세자는 의사를 결정하는 단계부터 세금을 어떻게 처리할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유명 로펌 등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밝혔다. 임 청장이 취임한 지 1년 5개월이 지난 만큼, 역외탈세와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선포한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국세청은 조사 결과 고의적인 세금포탈 사실이 확인되면 세금 추징은 물론 관련법에 따라 형사 고발할 예정이다. 세무사, 회계사 등이 역외탈세를 도운 정황이 드러나면 이들 역시 검찰에 고발하거나 관련법에 따라 자격 정지 및 자격증 박탈 등의 징계에 처할 계획이다. 한승희 국세청 조사국장은 “올해는 소득 및 재산의 해외은닉 등 역외탈세 분야에 세무조사의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며 “미국, 스위스 등과 금융정보 자동교환 확대로 역외탈세자 적발이 갈수록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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