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기업 고부가 해외사업 진출땐 예비타당성 조사 2개월로 단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1일 03시 00분


정부, 절차 간소화 방안 도입

공기업들이 고부가가치 해외사업에 진출할 때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이 도입된다. 정부는 올 하반기(7∼12월) 본격화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부터 이런 기준을 적용할 예정이다.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공기업들이 ‘투자개발형’ 해외 건설 및 플랜트 사업에 진출할 경우 예타 조사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3년의 시간이 걸리는 예타 조사 기간을 2개월 남짓으로 줄일 방침이다. 투자개발형 사업이란 시공사가 사업의 발굴 및 기획에서부터 관리·운영까지 전체 과정을 도맡는 것을 말한다. 단순 시공에 비해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 꼽힌다.

예타 조사 기준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국가재정법에선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 국가의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사업’에 대해서 예타 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국가의 재정 지원 규모가 500억 원 이상인 사업’으로 변경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7월경 최종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조치는 투자개발형 해외사업에서 ‘예타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마련됐다. 투자개발형 사업은 규모가 크고 정부 보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민간기업 단독이 아니라 공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수주가 가능한 영역이다. 하지만 그동안 차일피일 늦어지는 예타 작업으로 인해 해외사업 기회를 놓치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해외사업 수주를 위해선 실적이 중요한데 국내 업체들이 고부가가치 분야의 수주 실적이 없다보니 입찰에서 제외되는 사례도 많았다.

공기업의 해외 진출이 지지부진하면서 민간기업들은 수익성이 낮은 시공 부문만 수주해왔다. 그 결과 최근 10년간(2004∼2014년) 전 세계 투자개발형 건설시장은 232억 달러에서 1075억 달러로 약 4.6배로 성장했지만, 한국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2014년 기준 0.4%에 머물러 있다.

정부 관계자는 “시공 부문은 이미 원가경쟁력을 갖춘 중국과 인도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며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의 진출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도입됐던 ‘간이 예타 조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예타 조사를 간소화할 계획이다. 일반적인 예타 조사는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등을 분석한 결과를 종합해 사업성을 판단한다. 반면 간이 예타 조사는 정확한 사업 규모를 파악한 뒤 경제성 분석 중에서도 비용 분석만 실시했다.

특히 공기업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재무성 분석(투자수익률 및 투자자금 회수 기간)이 생략될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공기업 관계자는 “예타 조사를 할 때 해외사업은 국내 대형 투자사업보다 같은 사업비를 들여도 위험 요인이 많아 미래에 발생하는 수익이 적다고 본다”며 “확실하게 투자수익이 높은 사업만 예타를 통과하는 탓에 어지간한 수준의 해외사업은 추진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공기업#예비타당성조사#해외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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