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끈한 ‘관계형 금융’ 1년새 2조원 대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1일 03시 00분


업계 평판 등 연성정보 바탕 대출… 지역기반 탄탄한 지방銀서 활발
은행은 수요발굴, 中企는 자금안정… 금융당국도 대상업종 확대 등 지원

KEB하나은행의 김병구 신목동지점장(오른쪽)이 관계형 금융으로 대출을 받은 업체 대표와 함께 이 업체가 생산하는 제품 중 하나인 엘리베이터 부품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KEB하나은행의 김병구 신목동지점장(오른쪽)이 관계형 금융으로 대출을 받은 업체 대표와 함께 이 업체가 생산하는 제품 중 하나인 엘리베이터 부품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김병구 KEB하나은행 신목동지점장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로 출근한다.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하는 게 1차 목표지만 기존 거래 고객을 찾는 일도 중요한 업무다. 거래 업체들을 직접 찾아다니다 보니 회사 대표의 자녀 진학 등 개인사부터 종업원들에게 장학금을 준 일처럼 회사 내부의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꿰고 있다. 김 지점장은 “지난해 여름 주말을 이용해 한 거래처의 공장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회사 대표의 친형인 공장장이 폭염에도 직원들 대신 나와 야외 작업을 하더라”면서 “그 정도 열정이면 ‘자기만 살겠다’며 직원들을 내팽개치거나 은행 빚을 떼먹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담보가 부족해 더 이상의 대출이 쉽지 않았지만 KEB하나은행은 김 지점장으로부터 건네받은 정보를 토대로 20여억 원을 추가로 대출해줬다. 》

○ “CEO만 봐도 기업 평가 가능”


최근 은행들이 기업의 재무제표나 신용등급뿐만 아니라 업계 평판 등 비재무적 정보를 심사해 대출을 해주는 ‘관계형 금융’에 눈을 돌리고 있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의 관계형 금융 취급 잔액은 1조9000억 원으로 제도 도입 1년여 만에 2조 원에 육박했다.

관계형 금융은 은행이 기업과의 거래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파악한 기업 신뢰도, 업계 평판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장기 대출을 해주는 것으로 당국은 2014년 11월 이에 대한 지원방안을 만들어 은행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은 성장성 있는 기업에 대한 새로운 대출 수요를 발굴하고, 중소기업은 담보나 신용이 부족하더라도 사업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각 은행들은 관계형 금융을 위해 ‘연성(軟性) 정보 심사표’를 활용하고 있다. 회사 대표나 업체의 정보 가운데 계량화하기 어려운 비재무적 내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수단이다.

KEB하나은행은 대표자의 동종업종 업력, 노사관계의 안정성, 경영자의 윤리의식 등 30여 개 항목을 각각 A, B, C등급으로 평가한 뒤 이를 합산해 점수화한다. 대표자가 공공기관이나 관련업계로부터 표창을 받은 경력이 있다면 가점도 주어진다.

이용재 하나은행 심사역은 “총 92점 만점 중 80점 이상을 받은 우수 업체는 재무제표와 신용등급에서 다소 낮은 평가를 받더라도 대출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 올해부터 적용 업종 늘어


관계형 금융에 최근 강점을 보이는 것은 지방은행들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은행권의 관계형 금융 대출 가운데 47%인 9000억 원을 지방은행이 공급했다.

지방은행들은 해당 지역의 전통시장이나 산업공단마다 영업 기반을 탄탄히 확보하고 있어 시중은행에 비해 관계형 금융을 추진하기가 더 유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해 총 17건(137억 원)의 관계형 금융 대출을 해준 부산은행 녹산공단지점의 조성우 차장은 “한 냉장고 제조업체는 담보도 적고 전혀 알려지지 않은 회사라 대출이 어려웠는데 업소용 냉장고 시장 점유율이 50%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돼 대출을 해주기도 했다”며 “지점별로 거래 업체의 평판이나 내부 사정 등을 데이터베이스(DB)화해 둔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 업종에 국한됐던 관계형 금융의 취급 대상 업종을 전체 업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포함한 개선책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이런 시류에 맞춰 최근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고 있는 시중은행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민은행은 올해부터 직원들의 성과평가지표(KPI)에 관계형 금융 실적을 반영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관계형 금융을 통해 국내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이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시중은행보다는 지방은행과 저축은행 등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금융회사가 관계형 금융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관계형 금융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도 저축은행과 협동조합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면서 “지방 금융사들을 활용해 중소·서민금융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금융#대출#keb하나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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