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해외전시회에 갈 때마다 우리 기업들이 좀 정부 의존적이라는 인상을 받은 일이 있다. 많은 중소기업이 부스 임대료나 참관비 등을 정부나 지자체의 공공기관 예산으로 일부 지원받아 참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기업들 처지에서는 이런 정부 지원금이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기 돈을 온전히 내고 가는 것이 아니기에 절실하게 비즈니스에 임하기보다는 단순히 견문을 넓히는 기회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또 해외 바이어에게 제품을 알리는 준비에 소홀한 감도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CES에 가보면 일부 한국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점을 아쉬워하던 중 치밀한 준비를 통해 이번 CES에서 좋은 결과를 낸 국내 스타트업인 바이로봇의 사례를 접했다. 이런 기업이 더 많이 나와야 할 것 같아서 소개해본다.
바이로봇은 한국에서 민간용 드론을 만드는 몇 안 되는 회사다. 2013년 말 손바닥 위에 올라가는 완구 드론을 처음 내놨다. 작지만 비행전투게임이 가능한 고성능 드론이다. 이 회사가 올 4월에 양산할 페트론이란 신제품은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가상현실 고글로 조종하거나 자동으로 사람을 따라오게 할 수도 있다.
바이로봇은 지난해 KOTRA 지원으로 처음 CES에 참가했다. 부스비가 전액 지원되었기 때문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참가할 수 있었지만 한국관이 워낙 외떨어진 데 있어서 아쉬움이 컸다. 이 회사 홍세화 전략담당이사는 DJI 등 중국 드론 업체들이 몰려 있는 사우스홀의 드론 섹션에 가보고 ‘내년에는 꼭 이곳으로 와야지’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2016 CES에서 드론관에 들어갔다. 부스 임대료만 4000만 원이 들었다. 부스 디자인을 외부에 의뢰했더니 견적이 1억 원이 나왔다. 그래서 부스 디자인부터 직접 했고 이케아에서 가구를 주문해서 직접 조립하는 등 발로 뛰어서 비용을 크게 낮췄다.
신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영문 보도자료와 동영상을 만들어서 거의 400개의 미디어에 초청 e메일을 보냈다. 그러자 약 150개의 미디어가 부스에 들르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중 폭스비즈니스뉴스는 CES 개막 직전에 부스에 들러서 생방송으로 바이로봇 드론을 소개해줬다. 덕분에 그 뉴스를 보고 또 많은 사람이 부스에 방문했다. 홍 이사는 “대략 1500명 정도가 우리 부스를 다녀갔다”며 “역시 자리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드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에 부스를 낸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이로봇은 스타트업으로는 거액을 투자해 CES에 참가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부스에 방문한 회사들 중에 세계적인 완구업체나 애니메이션 업체, 유통업체 등이 있었고 전시회가 끝나고 바로 후속미팅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후 바이로봇은 귀국 후 CES에서 만난 수많은 글로벌업체와 e메일을 교환하면서 4월의 제품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일종의 자립정신이다. 정부의 도움만을 바라기보다 필요하다면 이렇게 직접 과감히 투자해서 세계시장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정부는 직접적인 지원보다 이런 성공 노하우가 서로 널리 공유되고, 도전정신을 갖춘 회사가 많이 나올 수 있는 기업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