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릴레함메르 겨울청소년올림픽이 개막한 12일(현지 시간) 오후 7시. 개막식 행사가 한창인 올림픽 경기장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인 삼성 갤럭시 스튜디오 가상현실(VR) 스테이션으로 이동해 삼성전자 VR 헤드셋인 기어VR를 착용했다. 기어VR 속에선 조금 전까지 두 눈으로 지켜봤던 광경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정면에는 선수단 대표들이 서 있는 무대 뒤로 대형 스크린이 보였다. 천천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무대 아래 설원 위로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입은 각국 청소년 대표단의 모습도 들어왔다. 선수들이 손에 든 국기가 잔잔한 바람에 조금씩 휘날리는 모습까지 마치 실제 옆에서 보는 것처럼 고스란히 전달됐다.
○ 가상현실로 생중계된 올림픽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삼성전자는 릴레함메르 겨울청소년올림픽 개막식을 올림픽 사상 처음 VR로 생중계했다. 1년 전부터 준비해온 프로젝트로 IOC 관계자들은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 삼성전자 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를 찾아 최신 VR 기술을 소개받기도 했다.
IOC와 삼성전자는 180도 각도로 촬영이 가능한 VR 카메라 두 대를 개막식장에 설치해 풀 샷과 클로즈업 샷을 번갈아가며 현장을 중계했다. 꼭 릴레함메르 현지가 아니더라도 세계 어디서든 기어VR만 있으면 ‘넥스트 VR’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에서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는 개막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었다.
기어VR를 머리에 쓰고 영상을 처음 켰을 때 바라보는 방향이 정면이다. 이를 기준으로 고개를 좌우상하로 돌려도 영상이 이어진다. 180도 영상이라 고개를 목 뒤로 돌리니 검은 화면 위로 올림픽 엠블럼과 삼성전자 로고만 보였다.
말 그대로 가상현실을 구현한 영상이기 때문에 TV 화면을 통해 지켜보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감상한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직접 콘텐츠 속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어VR를 통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공간을 원격으로 체험하는 ‘텔레프레젠스(telepresence·원격현장감)’를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VR 기기를 거치면서 영상이 확대되기 때문에 화면 픽셀이 눈에 보이는 등 화질이 떨어지는 기술적 한계는 아직 있었다. 그래서 흡사 3차원(3D) 컴퓨터그래픽 게임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삼성전자는 21일까지 매일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 스키점프 등 주요 경기의 하이라이트 장면도 VR 영상으로 제공한다. 경기장 안쪽에 VR 카메라가 설치되기 때문에 오히려 실제 관중석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가까이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개막식에 하루 앞서 11일 삼성 갤럭시 스튜디오를 찾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경기를 치르는 순간 선수들이 느끼는 모든 감정과 감동을 관중도 VR를 통해 더 잘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VR 속으로 들어간 스포츠업계
첫 올림픽 VR 생중계를 성공적으로 마친 IOC는 앞으로도 올림픽 주요 행사마다 VR 기술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올해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여름올림픽은 물론이고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도 VR 생중계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IOC 산하 올림픽방송기구(OBS) 야니스 에자르호스 대표는 “릴레함메르 겨울청소년올림픽은 첫 올림픽 VR 시험대였다”며 “VR 기술이 기대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브라질 올림픽부터는 개막식뿐만 아니라 매일 최소 한 개 이상의 경기를 생중계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올림픽 방송 중계권을 가진 각국 방송국들과 협의만 잘 이뤄지면 올림픽 VR 경기는 모두 무료로 중계될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뿐만 아니라 최근 주요 대형 스포츠 행사마다 VR 기술을 도입하느라 바쁘다. 경기장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넘어 더 많은 팬에게 다가가기에 VR가 최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10월 미국프로농구(NBA)가 가장 먼저 삼성전자와 손잡고 기어VR를 통해 주요 경기를 VR 중계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슈퍼볼 경기도 주요 하이라이트 등이 VR 영상으로 제공됐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VR 생중계 시장이 2025년이면 전 세계적으로 시청자 9500만 명을 확보해 41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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