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의 특징은 폐쇄성과 배타성이다. 패밀리 비즈니스의 특성상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밖에선 알 도리가 없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 갔다가 비위 사실이 적발돼 소속 부처로 복귀한 공무원 5인의 근황을 보면 관료사회는 마피아를 빼닮았다. ‘경력 세탁’ 거쳐 되레 영전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실 A, 경제수석실 B C D, 민정수석실 E 행정관은 2013년 민간 기업 등에서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 청와대는 당시 별 징계 없이 이들을 돌려보내 논란이 됐다.
부처에 확인해보니 이 5명 중 A, B, C는 최근 정책총괄 같은 핵심 보직으로 영전했고 D는 대형 로펌에 전문위원으로 재취업해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E는 보직이 없지만 징세 현장에서 중요 업무를 맡고 있다.
이들이 범법자는 아니다. 관복을 벗진 않아도 된다. 중징계는 없었지만 그간 받았을 정신적 고통을 감안하면 눈감아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중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청와대에서 ‘늘공’(늘 공무원·직업 공무원을 뜻한다)은 오전 7시에 나와 끼니를 즉석 볶음밥으로 때우고 오후 10시에 퇴근한다. 긴장이 일상인 특수 직장인데도 비정상적인 접대를 당연하게 받은 공무원이라면 배포는 클지 몰라도 도덕성은 평균 이하다.
원소속 부처인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은 2014년 초부터 최근까지 2년에 걸쳐 이들을 ‘경력 세탁’해 줬다. 1단계는 비리에 대한 물 타기다. 본인은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하고 부처 관계자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 일이 꼬여 억울하게 됐다”고 감싼다. 출입기자들이 ‘사정(司正)팀이 과도하게 몰아붙인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포장을 한다.
2단계에선 비리 당사자들을 관심이 덜한 부서로 보낸다. 대중적 이슈가 적을 뿐 중요한 부서여서 ‘언제든 살아날 불씨니 홀대하지 말라’는 신호도 담고 있다. 비리가 잊혀질 무렵 해당 공무원들이 언론과 접촉하며 업무 능력을 홍보하는 3단계를 거쳐 경력 세탁의 마지막 시기인 4단계 때 핵심 부서로 이동한다. 부처 내에서는 ‘한 번 상처가 나도 조직에 충성하면 재기할 수 있다’는 비뚤어진 신뢰가 두터워지고 패밀리는 더욱 끈끈해진다.
공무원 사회에 도덕불감증이 만연하면서 부처 산하인 공공기관의 나사도 점점 헐거워지고 있다. ‘신의 직장’이라는 마사회의 한 직원은 2014년 4월부터 올 1월까지 지사 건물 지하 1층의 식당 운영에 개입하다가 이달 초 내부 감사에 적발됐다. 작년 감사원 감사 때는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등에서 이사회 승인 없이 상품권을 지급하거나 성과급을 과다 지급한 문제도 드러났다. 정부는 공공기관 개혁이 성공이라고 자평하지만 관리 사각지대에선 곰팡이가 슬고 있다.
‘정권 차원의 공공개혁 선언→부처 주도 개혁 추진→개혁의지 퇴색→부처와 공공기관의 타협→원점 회귀’ 시나리오는 과거 정부에서 예외 없이 반복됐다. 현 정부는 부처와 공공기관이 함께 매너리즘에 빠지는 네 번째 구간쯤에 있다. 공공개혁 손댈 자격 없다
비리 공무원들은 정무 감각이 뛰어나다. 권력 주변에서 정치인 못지않게 포퓰리즘에 물들어 국내 문제에 집중할 뿐 세계화에 저항하고 자본 노동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싫어한다. 당연히 고통스러운 개혁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 청와대 퇴출 공무원 5명 중 4명은 현재 교육개혁 금융개혁 세금개혁에 직간접으로 개입하고 있다. 용 머리로 시작한 4대 개혁이 결국 뱀 꼬리로 끝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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