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급락한 중국 증시는 세계 증시를 혼란에 빠뜨렸다. 지난해 12월 단행된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연초부터 글로벌 경제를 흔들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2014년 시작된 글로벌 인수합병(M&A) 열풍은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경제 여건이 양호한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와 유럽에서도 M&A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저성장 저금리로 대변되는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 시대’를 맞아 M&A는 글로벌 기업의 생존 수단이 됐다. 금융위기 이후 공급 과잉 상태이던 산업군에서 자연스럽게 매물이 나오고, 한정된 시장을 차지하고자 선도기업 혹은 후발주자가 경쟁사와의 동거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M&A가 성사되고 있다. 공급 과잉과 소비 침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맞아 기업들은 설비투자보다 M&A를 성장의 해법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세계 M&A 실적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최대 규모인 약 5870조 원으로 집계됐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절반인 2800조 원을 차지했고 영국(780조 원)과 중국(673조 원)이 뒤를 이었다. 지역별로는 중국 M&A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아시아가 유럽을 제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유럽은 최근 2년간 M&A 거래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올해는 다양한 산업군에서 M&A 소식이 전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성사된 M&A의 특징은 동일 업종 상위사 간의 초대형 ‘딜(deal)’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글로벌 제약업체인 화이자의 앨러건 인수(인수금액 187조 원),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벨기에 AB인베브의 SAB밀러 인수(137조 원) 등이 대표적이다.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수요 급감에 따른 매출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M&A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중국도 유럽 M&A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란 별칭 때문에 제조업 국가라는 인식이 있지만, 최근 중국의 행보는 글로벌 기업 인수자로서 굵직한 계약을 잇달아 성사시키고 있다. 성장 둔화에 직면한 중국 기업들이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글로벌 기업의 기술력과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는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확고한 시장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 많다. 인수자들은 충분한 돈을 투입함과 동시에 기업 운영의 노하우를 살릴 수 있도록 독립성을 보장한다. 자금에 기술과 인지도가 결합하면서 인수자는 단기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시간을 돈으로 사는 M&A는 자금력을 갖춘 기업들에 분명 매력적인 성장전략이다.
최근 한국 기업들도 해외시장 진출과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M&A를 시도하고 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국 경제의 기적을 이뤄낸 한국 기업들이 이제 M&A라는 고성능 성장 엔진을 장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길 기대해 본다. 고영완 삼성증권 런던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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