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1층에 있는 신한은행 IFC(International Finance Center)에 들어서자 일본어가 들려왔다. 지난달 29일 문을 연 외국인 전용 금융서비스센터인 이곳에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가운데 최소 2개 언어에 능통한 프라이빗뱅커(PB) 3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외국계 기업의 투자 상담을 해주고 동시에 해당 기업 직원들의 자산관리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IFC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3개 언어로 번역된 금융상품 설명서도 지점에 비치하고 있다.
이 PB들은 이 지점뿐 아니라 인근 지점에 찾아오는 외국인 고객도 함께 응대한다. 2개의 상담실이 있는 IFC에는 하루 10여 명의 외국인 고객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이 지점에서 근무하는 이정현 과장은 “외국계 기업의 일본인 사장이 그동안 월급을 받으면 이자가 거의 없는 통장에 넣어놓기만 했는데 정기예금 상품을 만든 뒤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며 “적금 상품에도 가입하기 위해 또 오겠다고 말하고 갔다”고 설명했다.
○ 자산 관리는 기본, 의료관광 특화 서비스도 출시
시중은행들이 소득 수준이 높은 주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특화된 서비스를 최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과거 시중은행의 외국인 대상 업무가 근로자의 소액 송금, 환전 등에 국한됐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외국인 고액자산가를 타깃으로 한 지점들은 서울 광화문 일대, 서울 강남구 역삼동과 용산구 한남동, 인천 송도, 제주도 등에 집중적으로 개설되고 있다. 신한은행에 앞서 KEB하나은행도 지난해 6월 서울 역삼동에 ‘인터내셔널PB센터(IPC)’를 열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자산관리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중국인이 주요 고객층인 이곳은 상주하는 직원 6명 모두 중국 전문가로 구성됐다. 국민은행도 외국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는 중국인들이 4, 5년 전부터 부동산 투자에 대거 뛰어들면서 이들을 잡기 위한 금융권의 경쟁이 치열하다. 시중은행 대부분이 제주도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승준 KEB하나은행 IPC 센터장은 “투자를 통해 영주권을 발급받으려는 중국인이 많아 문의가 해외에서도 하루에 여러 건 들어온다”고 귀띔했다.
거주자뿐만 아니라 관광객을 위한 금융 서비스도 고급화 바람을 타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올 들어 원광대병원, 자생한방병원 등과 협약을 맺고 한국으로 의료 관광을 오는 외국인 환자들이 은행에 미리 예치해놓은 돈으로 병원비를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 그동안 소득 입증이 어려워 비자 발급에 애를 먹었던 중국인 환자들을 겨냥한 서비스다.
○ 국내 거주 외국인 10년간 3배로 증가
시중은행들이 우량 외국인 고객을 확보하려는 것은 거주 외국인 자체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현재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 수는 174만 명으로 2006년(54만 명) 이후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외국인 유효고객(은행에 실제 계좌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고객)은 2013년 39만 명에서 지난해에는 5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은행들의 주된 타깃은 이 중에서도 소득이 많은 전문직 외국인들이다. 이들은 은행에 맡기는 자산 규모가 커 은행 수익에 크게 기여한다. 또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 은행의 인지도를 높여주기 때문에 해외 진출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앞으로 국내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고소득 외국인 수는 더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은행들의 갈 길이 멀다는 견해도 있다. 아직은 단순한 송금 서비스의 비율이 너무 높아 자산관리 등을 통한 수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천 송도나 제주도의 경우 외국인들이 세금 문제 때문에 상담을 받는 경우는 꾸준히 있지만 이것이 실제로 금융상품 가입 등으로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면서 “아직 국내 은행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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