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비치는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의 이미지는 어떨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가 ‘졸부’일 것이다. 한국에서 ‘유커’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2011년 무렵 그런 이미지가 굳어졌다.
당시 한국 면세점의 비싼 럭셔리 브랜드 매장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방 수십 개가 전시된 진열대를 가리키며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달라”고 주문한다는 ‘도시 전설’이 나돈 적이 있다. 최근 만난 한 면세점 관계자는 “부풀려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씀씀이가 한국인의 상식을 뛰어넘었던 것 역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랬던 중국인 관광객들의 한국 내 소비 형태가 바뀌고 있다. 중국 최대의 명절 춘제(春節) 기간이었던 7∼13일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를 보면 변화가 뚜렷하다. 지난해와 비교할 때 이 기간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중국인 관광객 매출 증가율은 106.9%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 본점은 53% 성장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백화점보다 마트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사들이는 제품도 비싼 소비재에서 생필품으로 전환됐다. 주요 대형마트의 춘제 기간 중국인 대상 매출 1위 상품은 ‘모근샴푸’, 2위는 ‘짬뽕라면’으로 집계됐다. 마스크팩, 초콜릿, 김 등 한국인이 주로 사는 제품이 한국을 찾은 중국인에게도 인기 제품이 됐다.
이는 한국 관광업계에 두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우선 표면적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의 1인당 매출인 ‘객단가’가 줄어든다. 실제 롯데면세점 본점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의 지난해 객단가는 56만 원으로 1년 사이에 14% 줄었다. 이번 춘제 매출을 살펴보면 객단가 감소 현상은 올해도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대형 백화점과 럭셔리 브랜드 등을 중심으로 ‘유커 관광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한국 제조업체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롯데백화점에서는 춘제 기간 국내 선글라스 브랜드인 ‘젠틀몬스터’가 샤넬 등 유명 수입 브랜드를 제치고 판매액 3위에 올랐다. 배우 전지현 씨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착용하며 유명해진 제품이다.
현대백화점에서도 국내 여성의류 브랜드 ‘타임’이 중국인 대상 판매순위 9위에 올랐다. 국내 브랜드가 이 백화점의 중국인 판매 상위 10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짬뽕라면은 중국인 관광객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으로서는 일부 수입·유통업체에 이익이 집중되는 명품 수입 브랜드 이상으로 소비 경기 상승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들이다.
남은 과제는 제2의 젠틀몬스터, 제2의 짬뽕라면을 찾는 것이다. 해외 본사 정책에 따라 가격이 매번 바뀌는 글로벌 사치품에, 다른 국가보다 더 많은 면세 혜택을 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관광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2014년 미국 스타벅스에서 판매하기 시작해 한국 스타벅스로 ‘역수입’된 한국산 김 과자처럼, 새로운 소비 트렌드는 우리가 만들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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