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의 체감경기 상황을 전반적으로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가 급격히 악화돼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수준으로 추락했다. 수출·내수 부진에 남북 관계 악화에 따른 안보 위기, 글로벌 경제 불안 등이 겹치면서 앞으로의 경제 상황을 진단하는 소비자들의 경기 전망은 약 7년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얼어붙었다. 이 같은 경제 주체의 심리 악화는 부동산 등 투자 시장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2월 소비자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8로 전달(100)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 메르스 사태가 최고조였던 지난해 6월(98)과 같은 수준이며,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소비자들의 경제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기준치인 100보다 낮으면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개별소비세 인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등 대대적인 경기 부양책의 영향으로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꾸준히 상승 흐름을 보이다가 지난해 12월부터 꺾이며 3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소비자심리지수를 구성하는 지표 가운데 6개월 후 경기전망을 나타내는 ‘향후경기전망’ 지수는 75로 전달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2009년 3월(64) 이후 6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현재 상황을 진단하는 ‘현재경기판단’ 지수도 전달보다 3포인트 하락한 65로 7개월 만에 최저치를 보였다.
정부가 이달 초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조기 집행,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소비심리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어 단기 부양책의 약발이 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계부채도 1200조 원을 넘어 빠른 속도로 늘고 있어 가계의 소비 여력은 갈수록 악화되는 실정이다.
그동안 경기 회복세를 이끌었던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둔화 조짐을 보이는 것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그동안 ‘미분양 무풍지대’로 꼽혔던 서울에서 지난달 미분양 주택 물량이 전달보다 49.2% 늘어났다. 서울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9∼11월 200여 채 수준을 유지하다가 12월에 갑절 이상인 494채로 급증했고, 올해 1월 737채로 또 증가했다. 울산 지역은 미분양 주택(420채)이 전달보다 96.1% 급증해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다만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606채로 전달보다 소폭(1.5%) 감소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지난달 서울 강남지역에서 고분양가를 내세운 ‘배짱 분양’ 단지에서 미분양 물량이 많이 나왔다”며 “분양시장 공급 과잉 논란에 중국 등 글로벌 경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이것이 주택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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