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에 출시된 허니버터칩은 지난 1년 6개월 동안 대한민국의 최고 히트상품 중 하나였다. 많은 사람이 허니버터칩에 대해 ‘참 운이 좋은 제품’이라고 평가한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감자칩을 비롯한 한국 과자를 ‘질소과자’라 부르며 과자에 내용물은 별로 없이 질소 충전만 잔뜩 해놓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더해 2013년 하반기에 국내 제과업체들이 원료비 상승을 이유로 과자 가격을 올리자 소비자들은 더욱 반발했다. 국내 제과업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때마침 수입 과자 전문점 등이 등장해 급속히 성장하면서 시장 판도가 재편될 기미도 보였다. 국내 소비자들이 수입 과자를 사먹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특히 의미가 컸다. 소수의 기업이 지배하던 과점시장인 한국 과자시장에서 그동안 소비자들은 제한된 종류의 제품만 접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입 과자 전문점 등의 등장으로 과자류에 대한 소비자의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상당수의 국내 과자가 외국 제품을 모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익숙하지 않은 해외 제품들도 우리 입맛에 맞을 수 있다는 걸 학습했다. 새로움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바로 이때 허니버터칩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감자칩이 등장해 시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허니버터칩 사례가 주는 경영학적 교훈을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집중 분석했다. ○ 허니버터칩 초기 성공 요인
첫 번째 성공 요인은 발상의 전환과 타이밍이었다. 해태제과는 ‘감자칩이 꼭 짜야 하나?’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만약 감자칩에 버터를 넣어 풍미를 좋게 하고 꿀을 넣어 단맛을 준다면?’이라는 가설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혁신방법론을 통해 성공을 거뒀다. 물론 출시를 앞두고 ‘아직 준비가 덜 됐다’ ‘시장 상황을 더 살펴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그러나 해태제과 경영진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8월에 출시되면서 ‘맥주소비계절’의 끝자락을 붙들 수 있었고 마침 지속된 더위도 도움이 됐다.
두 번째 성공 요인은 ‘인내’다. 예상치 못한 품귀현상이 벌어졌고 사람들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구매 성공기’나 ‘실패기’를 올리고 있었다. 모두가 허니버터칩 홍보대사가 된 상황에서 해태제과는 예전에 짜둔 홍보마케팅 전략 대신 새로운 방안을 찾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이제는 TV 광고에 나서야 할 때’라는 주장과 ‘허니버터칩을 스타로 만들어준 SNS 프로모션에 집중하자’는 주장이 맞섰다. 이때 신정훈 해태제과 대표이사는 돌연 “우리 아무것도 하지 맙시다”라고 제안했다. 허니버터칩 열풍은 모두 SNS 유저들의 자발성에서 비롯됐기에 ‘판매 증대’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의도적인 활동을 전개한다면 ‘자발성의 불’을 꺼뜨릴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 판단은 정확했다. 자발성이 일으킨 바람은 멈추지 않았고 고객들의 ‘허니버터칩 확보 놀이’는 계속됐다.
세 번째 성공 요인은 바로 ‘원칙의 고수’다. 출시 이전과 이후에 각각 두 가지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킨 것이 주효했다. 첫째는 ‘패키지 디자인’과 관련한 원칙이다. 허니버터칩은 패키지(봉지)의 디자인 자체가 일반적인 감자칩과 다르다. 원색을 주된 색조로 하면서 먹음직스러운 내용물 사진을 넣는 일반적인 방식을 취하지 않고 차분한 파스텔톤 색상에 귀여운 이미지의 일러스트를 사용했다. 이는 젊은 여성 멤버들로 구성된 한 외주 업체의 작품이었다. 해태제과는 ‘젊은 여성들’을 1차 타깃으로 한 만큼 이 업체의 감각을 믿기로 했다. 이는 전체적인 ‘콘셉트’를 일관되게 만들었고 성공으로 이끌었다. 두 번째 원칙은 ‘빼돌리기 방지’였다. 기업 전체 차원에서 ‘설사 인간관계가 끊기더라도 따로 빼돌리는 직원은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고 이를 계속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바이어들의 절규와 협박, 읍소가 이어졌고 수많은 ‘갑’이 과자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정말 물량이 없다’는 근거자료를 보내며 거절했다. SNS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는 제품이었기에 혹시나 따로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면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위기관리는 허니버터칩 열기를 이어가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 ○ ‘어쩔 수 없는 선택’, 그리고 평가
2014년 8월 1일 출시 이후 ‘품귀현상’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8월 말부터 ‘생산라인 증설’ 혹은 ‘신규 공장 건설을 통한 증산’ 여부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같은 해 10월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대한민국 3대 이슈’ 중 하나가 ‘허니버터칩의 증산 여부’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12월 초 해태제과는 ‘라인 증설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물론 100억 원이 넘는 투자를 해야 하는 라인 증설을 쉽게 결정하기 힘들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결정을 뒤엎고 4개월이 조금 지난 2015년 4월,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허니버터칩이 촉발한 ‘허니 열풍’은 정점을 지나 하강기에 접어들고 있었기에 과연 이것이 올바른 결정인지를 두고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증설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는 2016년 2월 현재 누구도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잠정적으로는 바람직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허니버터칩은 다른 허니 관련 제품들이 이미 쇠퇴하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완판’을 기록하고 있는 건 적은 물량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원조’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원조성 역시 지나치게 눈에 띄지 않으면 그 강점이 퇴색할 수 있기에 장수 제품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증산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기대와 달리 새로운 트렌드가 확산돼 허니버터칩 수요가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한 대응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해태제과의 전략 가운데 평가가 엇갈리는 또 다른 부분은 바로 ‘허니통통’이라는 ‘미투 제품’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제 살 깎아먹기’라는 비판이 가능한 부분이지만 이미 몇몇 경쟁사가 압도적 생산시설을 바탕으로 ‘유사품’을 만들어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해태제과가 고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영에는 정답이 없다. 따라서 허니버터칩과 관련한 해태제과의 전략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허니버터칩 사례는 갑작스럽게 제품 수요가 폭발하는 상황에서 마케팅 전략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설비 증설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미투 제품 개발을 해야 하는지 등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교훈을 줬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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