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업 성장 길 터준 ‘유연한 규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일 03시 00분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2공장, 2월말 초고속 상업생산… 비결은?

《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업체(CMO)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달 말 제2공장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2013년 10월 착공한 지 2년 4개월 만이다. 경쟁관계에 있는 글로벌 CMO들의 생산공장이 착공부터 상업생산까지 보통 4년, 길게는 5년까지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기간 단축이다. 더구나 제2공장의 생산 규모는 15만 L(세포배양기 기준)로 단일 시설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삼성그룹의 스피드 경영과 플랜트 건설 능력, 반도체 산업에서 쌓은 클린룸 운영 노하우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

1일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따르면 여기엔 결정적인 ‘한 수’가 더 숨어 있었다. 규제가 신성장산업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적극적인 서포터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 원료물질 ‘무더기 보증’ 해준 식약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2월 인천 연수구 첨단대로에 2공장 건물 및 설비를 완공했다. 그런데 상당 기간이 소요되는 생산 최적화 작업을 앞두고 높은 규제의 장벽을 마주했다. 지난해 1월 1일 시행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이었다.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은 세포 배양을 위해 PH 조절제, 항체 추출용 레진, 각종 시약 등 120여 가지의 원료물질을 사용한다. 화평법대로라면 이 물질들을 정부기관에 모두 등록한 뒤 평가를 거쳐 사용 승인을 받아야 했다. 물질별로 3∼6개월의 시간과 많게는 수십억 원의 비용이 예상됐다. 게다가 일부는 원료공급사나 고객사가 영업비밀 유출을 우려해 공개를 극도로 꺼리는 물질이었다. 석유화학, 철강,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생산현장에서 사용되는 유해화학물질을 엄격하게 관리해 안전사고를 막겠다는 목적으로 마련한 법이 신산업인 바이오의약품 제조업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때 식약처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삼성바이오로직스로부터 화평법에 따른 애로사항을 전해들은 식약처는 곧바로 화평법 주무 부처인 환경부와 협의에 나섰다. 바이오의약품 제조업에 이해가 밝은 식약처가 원료물질들을 대신 관리하고 환경부는 이들을 화평법에 적용하지 않는 방안이 논의됐다. 결국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쓰는 물질 중 108종은 ‘식약처가 정한 의약품 원료물질’에 포함됐다. 식약처가 원료물질의 안정성에 대해 ‘통으로’ 보증을 서 준 셈이다.

윤호열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업운영팀장(상무)은 “식약처 바이오의약품 정책과가 직접 송도를 방문해 물질들을 검증했고 관련 규정도 정비해줬다”며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상업가동은 상당 기간 미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인지방식약청 역시 세포주 및 각종 원부자재 수입 절차 등을 간소화해 생산체제를 조기 구축하는 데 힘을 보탰다.

○ ‘열린 규제 마인드’가 신산업 살린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12월 착공한 18만 L 규모 제3공장을 2018년 9월에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이 공장이 지어지면 글로벌 CMO 업체들 중 생산능력 1위(36만 L)에 오르게 된다. 2011년 4월 설립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처럼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워가는 데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역할이 컸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처음 송도에 입주한 2011년 당시 전체 공장 터는 도로보다 1.5m 낮아 항상 물이 고여 있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이 땅에 막대한 토양을 쏟아 부어 빠른 시간 내에 공업용지로 만들었다. 주위의 물웅덩이도 모두 매립했다. 모기와 같은 각종 벌레와 개구리, 쥐 등이 대량으로 서식하면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삼성 측 요청을 곧바로 수용해서였다.

▼ 기업 서포터 나선 공무원… 규제 해결에 본보기 사례 ▼

윤 팀장은 “바이오의약품 제조업은 아직 한국에 낯선 산업으로 정확하게 적용할 관련 법규가 미비한 것이 사실”이라며 “관련 공무원들이 모든 허가사항에 대해 일일이 법률적 근거를 찾으려 했다면 생산 자체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수많은 신산업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국내의 규제 인프라는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월 “사물인터넷(IoT), 3차원(3D) 프린터, 드론, 발광다이오드(LED) 램프 등 6개 사업 부문 40개 신사업이 사전 규제, 포지티브 규제, 규제 인프라 부재의 ‘규제 트라이앵글’에 갇혀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사례가 국내 신성장산업을 둘러싼 규제 문제 해결에 적잖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규제 인프라가 갖춰질 때까지 모든 신산업을 ‘올 스톱’ 시키면 국가경쟁력이 심각히 떨어질 것이라며 “정부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의 담당 공무원들이 ‘관련 규정이 없어서 안 된다’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열린 규제 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삼성바이오로직스#공장#상업#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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