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의 다른 경제]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왜 낙마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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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논설위원
홍수용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장관을 바꾸는 이유는 크게 문책, 아니면 임무 변경이다.

지난해 8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경질한 것은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묻는 메시지였다. 반면 올 1월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을 교체한 것은 총선에 나가라는 취지였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교체한 이유를 들어보면 대체로 이 기준에 부합한다. 단 한 명, 여전히 베일에 싸인 사람이 있다.
‘코스닥 띄우기’ 반대한 죄?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이하 신제윤)은 작년 2월 경질됐다. 2014년 초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원인이라는 설이 있지만 1년 전 일을 경질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보긴 어렵다. 핀테크 육성 등 가시적 성과만 볼 때 그는 훈장감이다.

그의 낙마 배경을 들여다보면 현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의 민낯이 드러난다. 2013년 중반 금융위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이 합쳐진 거래소에서 코스닥을 떼어내고, 벤처기업들은 이 코스닥에서 더 쉽게 자금을 모으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신제윤에게 보고했다. “청와대 의사가 반영된 정책으로 증시에 적당한 거품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생각했다”는 전직 관료의 설명은 창조경제와 결합된 ‘음모론’을 떠올릴 정도로 섬뜩하다. 사실 경기를 들썩이게 하는 데 증시 부양만큼 효과적인 정책은 없다. 2000년대 초반 닷컴 열풍을 떠올려보면 쉽다.

신제윤의 생각은 달랐다. 코스닥의 문을 과도하게 열면 벤처기업은 더 많은 자금을 더 쉽게 구할 수 있어 좋겠지만 투자자로서는 부실 주식에 덜컥 돈을 집어넣었다가 손실을 볼 수 있다. 신제윤은 우리은행 민영화 같은 현안이 제자리걸음을 하는데 리스크가 큰 업무를 새로 떠안기 어렵다고 봤다. ‘운용의 묘를 살리면 되지 굳이 코스닥을 분리해야 하는가’ 하는 반발심도 들었을 것이다. 그 대신 절충 차원에서 코스닥 상장 신고서 제출 의무를 완화해주고(2013년 6월), 상장 부담을 줄이는 대안(2013년 7월)을 마련했다. 이는 정권 실세의 기대치에 한참 못 미쳤다. 그리고 신제윤은 낙마했다.

임종룡 현 금융위원장이 작년 초 취임 직후 코스닥을 떼어내고 벤처 상장 기준을 완화하는 작업을 추진해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 “2005년에는 전산 비용을 줄이려고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쳤지만 이제는 코스닥에 별도 기준을 마련해 벤처를 육성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지난해 9월 정부는 거래소를 지주회사 체제로 바꾼 뒤 코스닥을 분리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냈다. 정치권은 어이없게도 쟁점 사안인 코스닥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지주회사 본점 소재지를 어느 지역에 둘지 정쟁만 벌이다가 시간을 낭비했다.
다음 정권서 폭탄터지면

정부는 최근 2단계 금융개혁 핵심 목표로 상장·공모제도 개혁을 들고 나왔다. 누구도 ‘코스닥 띄우기’라는 노골적인 표현을 쓰진 않았다. 그 대신 ‘거친 개혁’이라는 투사적 이미지로 포장했다. 코스닥이 많이 건전해졌다거나 투자자 보호에 힘쓰겠다는 안전장치도 뒀다.

하지만 지금 코스닥에는 영업이익으로 빚 갚기도 힘든 좀비기업이 수두룩하다. 위험한 기업이 증시에 대거 등장하면 투자자 보호막은 엷어진다. 코스닥 거품 영향으로 내년 대선 무렵에는 경기가 살아나는 듯한 착시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정권은 감당하지 못할 폭탄을 떠안게 된다. 그때 신제윤을 대책반장으로 기용하는 장면은 보고 싶지 않은 블랙코미디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신제윤#금융위원장#낙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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