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함, 부드러움 등 여성 특유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입지를 넓히고 있는 여성 창업가 3명이 한자리에 모여 벤처업계 생존기를
들려줬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선릉로 ‘빙글’ 사무실에서 만난 임수진 ‘헤이뷰티’ 대표, 문지원 ‘빙글’ 대표, 이은영
‘컷앤컬’ 대표(왼쪽부터).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8일은 세계 여성의 날. 세계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 리더십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국내 벤처업계는 아직 여성의 존재감을 체감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최근 몇 년간 벤처투자 열풍이 불면서 지난해 국내 신규 벤처투자액은 2조858억 원으로 과거 벤처 붐이 일었던 2000년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이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하는 벤처기업은 아직 적은 편이다. 여성벤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전체 벤처기업 중 여성이 CEO인 기업은 8.2%에 불과했다. 취업보다 훨씬 어렵다는 창업의 길을 걷고 있는 3명의 여성 벤처 CEO를 만나 벤처업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들어봤다. ○ “일단 창업하면 도망갈 곳 없어”
문지원 대표(40)는 한국 스타트업의 대표적 글로벌 성공 사례로 꼽히는 동영상 자막 사이트 ‘비키(VIKI)’의 설립자로 잘 알려져 있다. 문 대표는 일본의 인터넷 서비스 기업인 ‘라쿠텐’에 비키를 2억 달러에 매각한 후 2012년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빙글(Vingle)’을 설립했다. 여섯 살 아들을 둔 문 대표는 벤처기업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점을 묻자 잠시의 고민도 없이 “육아”라고 외쳤다. 문 대표는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밤 12시, 새벽 1시에 들어가야 할 일이 부지기수여서 육아는 외부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항상 마음 한구석에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데 이를 극복해야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1∼6월) 가장 기대되는 O2O(online to offline·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는 ‘헤이뷰티’는 인터파크, 디앤샵, 엠파스, 넥슨 등에서 신규 서비스 기획 전문가로 오랫동안 활동한 임수진 대표(39)가 설립한 기업이다. 임 대표는 본인이 뷰티숍 고객으로 느꼈던 불편함을 모바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어 과감히 창업에 나섰다. 임 대표는 “창업 분위기에 편승해 ‘스펙 쌓기’ 식으로 접근했다가는 100% 괴로움이 지속되다가 시장에서 조용히 사라질 것”이라며 “일단 창업을 하면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거래처 뚫으려 하루에 100번씩 방문
대학 졸업 후 줄곧 뷰티시장에서 활동해온 이은영 대표(32)가 설립한 ‘컷앤컬’도 입소문이 나면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컷앤컬은 이미지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직관적으로 찾을 수 있는 스타일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대표는 “창업에 지름길은 없는 것 같다”며 “일일이 찾아다니며 정성을 다하는 정공법으로 거래처를 뚫었다”고 말했다.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디자이너들이 “인스타그램 팔로어 어떻게 늘려요?”라고 물으면 일일이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마음을 열게 했다. 미용실과 피부관리실, 네일아트숍 등을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예약할 수 있는 ‘헤이뷰티’의 경우도 여러 뷰티숍을 거래처로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임 대표는 하루에 많게는 100곳씩 방문했다. 임 대표는 “완전히 ‘잡상인’ 취급을 받았지만 꼭 뚫어야 하는 곳은 다섯 번 넘게 찾아가 설득했다”며 “장미꽃, 초콜릿 등 남자 CEO들이 보면 ‘좀스럽다’고 생각할 만한 것을 내세웠는데 점차 이런 것들이 통하면서 거래처 수를 늘려나갔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성이 창업에 불리한 점은 거의 없다면서 벤처업계에 보다 많은 여성이 진출했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 대표는 “창업이라는 게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상 ‘무리’의 연속인데 이를 하나씩 극복해나가면서 ‘건강한 행복’을 느낀다”며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더 많은 여성이 벤처업계에 뛰어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섬세함, 부드러운 커뮤니케이션, 공감 능력은 여성 CEO들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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