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부광약품 등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잇달아 대형 수출 계약에 성공했다. 국내 제약사들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한국 제약 산업이 본격적인 성숙 단계로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녹십자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범미보건기구(PAHO)의 2016년 남반구 의약품 입찰에서 3200만 달러(약 389억 원) 규모의 독감 백신을 수주했다고 9일 밝혔다. 이는 2010년에 녹십자가 독감 백신 550만 달러(약 67억 원)어치를 수출한 이래 최대 규모다. 녹십자는 하반기에 있을 북반구 독감 백신 입찰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앞서 동아에스티는 8일 결핵치료제의 원료가 되는 약물인 ‘테리지돈’을 중국 제약업체인 ‘쑤저우시노’에 독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현지에서 임상시험 절차가 끝나면 5년 동안 최소 2057만 달러(약 250억 원)어치의 약물을 공급한다. 동아에스티는 지난해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에 이 약물을 584만 달러(약 71억 원)어치 수출했다.
보령제약은 8일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고혈압·고지혈증 복합 치료제의 임상 승인을 받았다. 이달부터 시작되는 임상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미국 시장을 본격 공략할 수 있게 된다.
이 밖에 부광약품은 3일 당뇨병성 신경병증의 개량신약 ‘덱시드정’을 필리핀, 베트남 등 6개국에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각국별로 등록절차가 완료되는 2, 3년 후부터 5년 동안 1500만 달러(약 182억 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제약업계에서는 최근의 수출 흥행이 특정 분야에 대한 오랜 연구개발(R&D) 투자 덕분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테면 녹십자는 40년 넘게 백신 사업 분야에 주력해 왔다. 녹십자 관계자는 “10년 연구 끝에 1983년 B형 간염 백신이 처음 나왔다. 이후 30년 넘게 수조 원을 투자해 백신 개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수출이 본격화했다는 것은 국내 제약 산업이 초보적 단계를 지나 성숙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 산업이 성숙해지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직접 한국에 진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 샤이어는 9일 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내 공식 진출을 선언했다.
샤이어는 희귀질환 치료제 전문 바이오 제약 기업으로, 파브리병 고셰병 등 희귀질환 치료제를 70여 개 국가에 공급하고 있다. 2014년 매출액은 60억 달러(약 7조3000억 원)다. 글로벌 제약업체인 암젠도 지난해 11월 국내에 진출했다. 2014년 201억 달러(약 22조7000억 원)의 매출을 올린 암젠은 생명공학 분야의 기술이 뛰어나 ‘바이오 거인’으로 불린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와의 경쟁에서 당장은 국내 제약사들이 밀릴 수도 있지만 신약 개발과 수출이 늘어나는 최근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