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사진)이 최근 주변에 추천한 토머스 왓슨 주니어 전 IBM 회장의 자서전 ‘IBM, 창업자와 후계자’.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며 추천하는 책이 있다. 1990년 미국에서 출판된 토머스 왓슨 주니어 전 IBM 회장의 자서전 ‘IBM, 창업자와 후계자(Father, Son & Co)’다.
왓슨 전 회장은 맨손으로 IBM을 창업했던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과 좌절, 그리고 아버지와의 오랜 애증 관계를 책 속에 솔직하게 털어놨다. 1956년 경영권을 승계 받은 뒤 아버지와는 다른 자신의 경영철학을 관철하기 위한 과정들도 기록했다.
이 부회장은 평소 삼성 수뇌부에 “IBM 같은 회사가 되자”고 강조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평가하는 IBM은 시의적절하게 사업구조를 바꾸는 데 성공해 최고의 하드웨어 기업에서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로 거듭난 회사다. 특히 아버지의 후광 속에 경영권을 물려받아야 했던 2세로서의 도전 과정을 담은 이 책이 이 부회장에게도 많은 영감을 줬을 것이란 게 재계의 분석이다.
실제 책 속에는 최근 삼성이 밟고 있는 변화와 유사한 부분이 많이 소개된다.
왓슨 전 회장이 입사하던 1930년대만 해도 미국 뉴욕 IBM세일즈연수원에서는 매일 아침 ‘IBM의 노래(Songs of the IBM)’가 울려 퍼졌다. 1990년대 후반까지 국내 주요 기업들이 아침 방송에서 사가(社歌)를 틀었던 것과 같다. 왓슨 전 회장을 비롯한 신입사원들은 ‘IBM인의 복장’이라 불리는 검은 비즈니스 정장에 칼라를 바짝 세운 흰 셔츠를 입으라고 배웠다. 삼성 신입사원들도 한때는 셔츠 소매 길이까지 지정한 ‘삼성인의 복장’을 입었지만 요즘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가보면 여름이면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원도 많다.
취임 후 획일적인 기업문화를 없애려고 노력했던 왓슨 전 회장은 사가와 유니폼뿐 아니라 아버지 시대에 당연시됐던 의전문화도 모두 없앴다. 이 부회장이 수행원 없이 종종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로 출장을 다니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아버지가 일군 회사를 시대의 변화에 맞춰 과감하게 변화시키고 신수종 사업을 찾아내는 것도 2세들의 숙제다. 왓슨 전 회장은 잘나가던 펀치카드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컴퓨터 시대 개막에 맞춰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IBM의 발 빠른 변신이 가능했던 건 수천 명의 우수 기술 인재를 채용한 그의 인사 전략 덕분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따뜻한 날씨에 익숙한 스탠퍼드대와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출신 인재들이 뉴욕으로 이주하는 걸 꺼린다는 얘기에 그는 아예 새너제이에 처음으로 컴퓨터 생산 공장을 차렸다. 이 공장은 오늘날 미국 실리콘밸리의 첫 씨앗이 된다. 삼성 역시 최근 실리콘밸리에 신사옥을 짓고 이 지역 인재 흡수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 누구보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이지만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짙은 존경과 그리움도 책 곳곳에서 묻어난다.
“IBM 수장 자리를 물려받은 지 6주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미국에서 가장 겁이 많은 사람이 됐다”고 회고한 그는 “경영수업을 받는 10년 동안 아버지를 이기고 싶어 발버둥쳤지만 막상 그 자리에 오르니 더 이상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다 채울 수 없다며 아버지가 쓰던 ‘회장(Chairman)’ 직함 대신 ‘사장(President)’ 직함을 썼다.
1971년 심장마비 증세로 최고경영자 자리를 전문경영인에게 넘긴 그는 동료 2세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많은 기업인 2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영활동을 해야 할지 물어온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견뎌낼 수 있으면 해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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