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개설 32만건중 절반이 농협… 가입서류 미리 받아 처리 가능성
“불완전판매 없게 하라” 지도
금융회사들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판매 경쟁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금융당국이 이를 경고하고 나섰다.
16일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융회사별로 판매 실적을 제출받아 과도한 실적을 올린 회사를 중심으로 경위를 파악하고 불완전판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도했다”며 “각 사의 실적 추이를 지켜본 뒤 현장조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와 은행권 등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판매 첫날인 14일 하루에만 약 15만 명에게 ISA를 팔았다. 이는 전체 시중은행과 증권사 등을 모두 합친 총 가입자 수(32만 명)의 절반에 육박한다. 전국 농협은행 지점이 약 1200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한 지점당 120명이 넘는 고객에게 ISA를 판매한 셈이다.
ISA는 예·적금 등 다른 금융상품과 달리 고객의 투자 성향을 분석하고 적합한 상품과 포트폴리오를 추천해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고객 1명이 영업점에 들러 ISA에 가입하는 데는 최소 30분 이상의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고, 한 지점에서 하루에 100건이 넘는 가입을 받는 것은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은행권의 공통된 반응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투자성향분석지 등 관련 서류를 고객들에게 미리 배포해 작성하게 하고 가입할 때 잠깐 점포에 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단축했을 수는 있다”며 “만약 고객을 끝까지 대면(對面)하지 않고 가입 절차를 끝낼 경우 불완전판매 및 금융실명제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 금감원 “실적추이 지켜본뒤 현장조사 결정” ▼
이에 대해 농협은행 측은 “지역 단위농협을 포함해 8만 명이 넘는 임직원이 첫날부터 적극적으로 가입에 참여해 실적이 좋았을 뿐”이라며 “대부분 예·적금 위주로 상품을 담아 가입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겉으로만 속도 조절에 나섰을 뿐 ISA 고객 유치를 위한 편법과 물밑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A은행 직원은 “대출 기업의 직원들로부터 가입 관련 서류를 한꺼번에 받아놨지만 일부러 전산 입력은 천천히 하고 있다”며 “본부에서도 혹시 검사가 나올 것에 대비해 ‘영업시간 이외에는 전산 처리를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털어놨다.
B은행 직원은 “실제 고객이 ISA에 가입하겠다고 제 발로 은행을 찾아온 경우는 지난 이틀 동안 한 명도 없었다”면서 “실적을 채워야 해 다른 은행 업무를 보러 온 고객이나 지인들에게 ‘1만 원을 대신 넣어줄 테니 일단 계좌 개설만 해 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ISA 가입자 수는 판매 첫째 날인 14일 32만 명에서 둘째 날(15일)에는 11만 명으로 줄어들며 다소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ISA가 당초 국민들의 재산 증식을 돕겠다는 취지를 벗어나 금융회사들의 실적 경쟁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ISA 판매 실적을 ‘영업점 성과평가기준(KPI)’에서 제외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한 상태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KPI는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라 정부는 관여하기 힘들다”면서도 “금융회사들이 ISA 판매나 계좌이동제를 경쟁사의 ‘고객 뺏기’로 인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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